1932년 봄 ‘역사적 그날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32년 봄 ‘역사적 그날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3.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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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기념관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다음달 2일까지… 상해 의거 직전 3일간의 행적 체험
윤봉길의사기념관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의 시작을 여는 ‘장부출가생불환’.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의사기념관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의 시작을 여는 ‘장부출가생불환’.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 의사의 역사적인 행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여행의 문이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가 오는 4월 2일까지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1일 막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누적 관람객 1만명을 돌파하는 등 큰 호응에 힘입어 연장 운영하게 됐다.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를 기획한 예산군 관광시설사업소 윤영미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상해 의거 90주년이었던 지난해 윤 의사의 순국일(12월 19일)에 맞춰 시작됐다”며 “의거 직전 3일간의 행적을 체험하며 윤 의사의 결의와 감정을 느껴보길 바라는 뜻에서 준비했다. ‘내가 윤봉길이 된다’가 이번 전시의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윤 학예사는 이어 “다양한 관람객이 있었지만, 특히 가족 단위 방문이 많았다”며 “전시 도록을 가족당 1부로 제한해 증정했는데 한 달여 만에 1000부가 다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고 부연했다.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는 윤 의사의 출사표와도 같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윤 이사의 ‘이향시’도 낭송된다. 그는 1930년 3월 6일 삽교를 출발해 단둥과 청도를 거쳐 1931년 5월 상해에 도착했다.

이향시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면 상해 전국 전도에 표시된 윤 의사의 행적지를 볼 수 있다. 상해 행적지는 1932년 4월 29일 의거가 거행된 홍구공원, 계춘건과 함께한 삼각지 시장 야채가게, 홍구공원 답사 후 백범 김구와의 점심 식사 장소, 1932년 5월 10일 김구 선생이 의거 전모를 발표한 피치 선교사 집, 백범 김구와 만난 사해다관, 윤 의사와 김구 선생이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한 김해산의 집, 한인애국단 선서식과 사진 촬영이 이뤄진 안공근의 집, 윤 의사의 마지막 숙소였던 동방공우 등이다.

윤 의사의 발걸음이 찍힌 상해 전국 전도 곁에는 그가 청도와 상해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도 볼 수 있고 들을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 제568호로 지정된 의사의 유품 중 어머니께 보낸 편지 2점을 공개 중이다. 이 편지는 윤 의사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함께 상해사변 등 당시 급변하던 세계정세도 생생히 담겨 더욱 흥미롭다.

어느 정도 윤봉길 의사의 마음에 공감하게 됐다면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그날들’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의거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윤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폭탄을 쌀 일본 보자기를 구매했으며, 이날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는 거사 계획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곳 한구석엔 빨간 가방이 놓여 있는데 이는 김구 선생이 윤 의사에게 전달할 폭탄과 총을 담아온 것이라고 한다.

의거 2일 전인 4월 27인 홍구공원을 답사한 날이다. 윤 의사는 답청시에 ‘금년 4월 29일에 방포일성으로 맹서하세’라고 적기도 했다. 또 이날 그는 동방공우로 숙소를 옮겼다.

의거 하루 전인 4월 28일 윤 의사는 홍구공원을 다시 찾았으며, 위장을 위한 일장기를 구매했다. 또 자필 이력서와 유척시 두 아들과 청년제군, 백범 선생에 올리는 글을 썼으며, 폭탄 사용법도 익혔다.

상해 의거 디데이(D-day)인 4월 29일에는 김해산의 집에서 김구 선생과 생애 마지막 아침 식사를 했다. 당시 백범은 윤 의사와 회중시계를 교환한 후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고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윤 의사는 도시락 모양 폭탄은 보자기에 싸고 물통 폭탄은 어깨에 메고 김구 선생과 하비로까지 걸었으며 오전 7시50분쯤 홍구공원에 도착했다. 이후 윤 의사는 오전 11시40분쯤 단상에서 19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뛰쳐나와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상해파견군 사령군 시라카와와 해군사령관 노무라 사이에 떨어져 폭발했으며, 일제 수뇌부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곳에서는 바늘과 실로 보자기 꾸미기 체험을 할 수 있고, 홍구공원 사진 퍼즐을 맞출 수 있으며 구현된 단상에 폭탄도 던져볼 수 있다.

역사적인 의거 현장 후에는 피 묻은 흰 손수건과 회중시계, 2각짜리 지폐 한 장, 인장, 알 없는 안경집 등 윤 의사의 유품을 볼 수 있고, 1980년 6월 21일 태어나 1932년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순국한 그의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다.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끝자락에 있는 심문조서 발췌 글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당시 윤 의사는 “한두 명의 상급 군인을 살해한다고 독립이 쉽게 될 리는 없다. 이로 인해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아가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명료하게 하는 데 있다. 조선이라는 관념을 모두의 뇌리에 깊이 새겨 넣는 것이 장래 우리의 독립운동에 관해 결코 헛된 일이 아닐 것임을 믿는다”고 일갈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윤영미 학예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윤봉길이 된다’는 말이 잊히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의 불꽃 같은 여정을 꼭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윤봉길의사기념관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특별전시장 입구와 포토존.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의사기념관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윤봉길의 마지막 하루’ 특별전시장 입구와 포토존.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 의사가 어머님께 보낸 편지.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 의사가 어머님께 보낸 편지.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직전 행적 중 4월 26일. 이곳에선 김구 선생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직전 행적 중 4월 26일. 이곳에선 김구 선생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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