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8)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8)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8.05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 선배는 정원창 구의원과 마주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치수 기자, 어서 와요. 이런 이야기는 같은 지역신문 기자들끼리 나누는 게 좋아요.”

정 의원이 나를 반기면서 서 선배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난 2~3주 동안 얼마나 어려웠으면 신문을 못 냈는지 나도 이해는 가네. 그래도 바른말 하는 신문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모든 지역신문이 구청의 박수부대 노릇을 하면 지방자치가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의원들도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집행부를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신문도 있어야 서로 보완하며 구청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어.”

“구청이 돈줄을 끊은 후부터 적자가 쌓이는데 달리 자구책을 찾지 못한 한양길 사장께서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올곧은 길만 가겠다고 하셨던 분이 임 구청장을 찾아가 무조건 사과하고 화해를 요청하셨답니다. 제가 같이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정말 비굴하게 무릎을 꿇으신 것 같아요.”

“아니, 한 사장이 무조건 사과할 게 뭐 있다고 그래. 지방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불가피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앞으로 그 강도를 조금씩 낮추겠다든지, 이렇게 문제를 풀어야지. 구청장도 한 발짝 양보를 하고 말이야.”

“하지만 구청장이 양보나 타협을 할 분입니까? 구청 홍보예산으로 칼자루를 쥐고 아예 우리 신문사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백기를 드니까 다시 예산을 지원해 주기로 했나?”

“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구청장이 화해하는 조건으로 신문 1면 하단 광고란에 공개사과문을 게재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나갈 신문에는 그 동안 청룡랜드와 관련해서 실었던 모든 기사가 오보였고, 구청장을 깠던 사설과 칼럼에 대해서도 정정보도문과 함께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사과문이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나? 내가 보는 관점에서 자네나 한 사장이 쓴 기사는 전혀 오보가 아니었어.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비판했어. 행정안전부와 환경부, 시에서도 청룡랜드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결국 퇴짜를 놓은 것 아닌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면서 나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이거 자네로서도 보통 일이 아니군. 오보를 쓴 사이비 기자가 됐고, 청룡랜드 사업을 망치게 한 장본인이 돼 버렸네. 나도 할 말이 없네. 청룡동이 내 지역구로서 대부분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이라 자네만큼 용기있게 청룡랜드를 앞장서 반대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입장에서 구경만 했으니…. 그저 자네가 쓰는 글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만 성원하고 있었지.”

“이제 푸른용뉴스마저 청룡구의 나팔수로 전락해버려 저는 더 이상 여기 근무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제 사직했습니다.”

서 선배의 말에 정 의원도 나도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잠시 침묵했다. 정 의원이 조금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서 선배에게 물었다.

“한 사장이 사직을 만류하지 않았나?”

“사장님도 도리가 없잖아요. 참, 구청장이 구청 출입기자를 서경만 기자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한 것도 또 하나의 조건이었습니다.”

“구청장이 신문사 인사까지 다 하네. 갑의 횡포가 이만저만 아니구먼. 서 기자, 함부로 사직하지 마.”

“계속 이 신문사에 남아 있으라고 해도 권력에 아첨하는 기사 저 잘못 씁니다.”

“한양길 사장한테 전화 한번 해야겠다.”

“우리 사장님, 요즘 전화 잘 안 받을 겁니다.”

서 선배가 정 의원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변절했으니 전화 받을 기분이 아니겠지. 어쨌든 한번 시도해 볼게.”

정 의원이 스마트폰을 들고 저장된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저는 이미 회사와 관계를 끝냈습니다. 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세요.”

“걱정 말게. 모른 척 하고 그냥 안부전화나 하는 것처럼 통화할 거야.”

정 의원이 신호를 한참 보내며 기다렸지만 서 선배의 말대로 한 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의 유선 전화번호로도 신호를 보냈으나 여직원으로부터 출타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