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2 – 법(法)이라는 도구
[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2 – 법(法)이라는 도구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4.2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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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병창 청운대학교 교수

오늘날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법치(法治)’의 전성기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나라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 간 다툼은 물론이고 집단 간 분쟁 심지어 정치적 갈등마저도 법에 의해 옳고 그름이 갈린다. 그러나 법은 양날의 칼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로운 도구도, 치명적인 흉기도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상기해봐야 할 인물이 있다. 전국(戰國)시대 대표적 ‘법가(法家)’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이사(李斯)이다.

이사(?~BC208년)는 초(楚)나라 상채 출신으로, 순자(荀子)에게 배우고 진(秦)나라로 가 승상 여불위(呂不韋)에게 발탁돼 객경(客卿)이 됐다. 정국거라는 운하 건설에 공을 세웠고, 시황제(始皇帝)가 6국을 통일한 후에는 봉건제에 반대하고 군현제를 진언해 승상이 됐으며,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시켰다.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와 공모해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고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살하게 했다. 하지만 함께 일을 도모했던 조고의 참소로 투옥돼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며 삼족이 몰살당했다.

이사라는 인물의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나. 젊은 시절 군(郡)의 하급 관리로 있었는데 관사 변소에서 쥐들이 불결한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한편 부잣집 창고 안의 쥐는 쌓아 놓은 곡식을 먹고 큰 지붕 아래에 살면서 사람이나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봤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의 현명함과 현명하지 않음을 비유하면 쥐와 같구나. 결국 자신이 처한 바에 달려 있구나!” 이후 관직을 버리고 순자의 문하에서 제왕의 학문을 배웠다.

둘. 학업을 마친 후 초나라 왕은 섬기기가 부족하고 육국(전국시대의 여섯 나라)은 모두 약해 공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해 서쪽 진나라로 가고자 했다. 이에 순자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때를 얻으면 태만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제후국들이 다투는 때로 유세객이 나랏일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왕은 천하를 삼켜 제왕을 칭하며 다스리려고 하니, 이는 벼슬 없는 선비가 바삐 움직일 때로 유세가들의 기회입니다. (중략) 비천함보다 큰 치욕은 없고 곤궁함보다 심한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비천하고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방하며 이익을 혐오해 스스로 무위에 맡기는 것은 선비의 본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으로 가 진왕에게 유세하고자 합니다.”

셋. 진나라에 이르러 이사는 진의 재상 여불위의 문객이 됐는데, 여불위가 그를 현명하다고 여겨 낭관(郎官)에 임명했다. 이사는 이 일로 기회를 얻어 진왕에게 다음과 같이 유세했다. “평범한 사람은 기회를 놓칩니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남의 빈틈을 이용해 모질게 일을 이룹니다. (중략) 진나라의 강성함에 대왕의 현명함이라면 손쉽게 제후국을 멸망시키고 황제의 대업을 이뤄 천하를 통일할 수 있으니 이는 만세에 한 번 있을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면서 서둘러 성취하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해지고 서로 모여 합종을 약속할 테니 황제의 현명함이 있어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진왕은 이에 이사의 계책에 따라 모사를 은밀히 파견해 제후들에게 유세하게 했다. 제후의 명사 중 뇌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와는 결탁했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죽였다. 또 군주와 신하를 이간질하는 계략을 썼는데, 진왕이 뛰어난 장수를 보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진왕은 이사의 공을 인정해 그를 객경으로 삼았다.

이상 세 이야기는 학문의 길에 들어선 계기,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루고자 했던 바, 진왕에게 유세하고 공을 세우는 과정 등 이사의 삶 전반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결국 이사는 법치에 대한 신념과 성공을 향한 욕망으로 뜻을 이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사가 법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했고 그의 말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엿볼 수 있다. “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인불통고금, 마우이금거)”, 즉 사람이 고금에 통달하지 못하면 말과 소에게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고 했다(명심보감 근학편). 법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역사 속 이사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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