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홍성의 ‘뒤떨어짐’을 이제라도 바로 잡자
[칼럼] 홍성의 ‘뒤떨어짐’을 이제라도 바로 잡자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5.2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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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진 문화그루 ‘율律’ 대표

홍성은 ‘홍주(洪州)’라는 지명을 사용한 이후 10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다. ‘홍성’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강제로 지명이 부여된 이후 불과 100년 조금 넘게 지난 명칭이다. 하지만 홍성 사람들은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있는지, 홍주라는 고유한 명칭을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여기서는 ‘홍주 지명 되찾기’를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아니다. 이렇듯 지명 하나 제대로 되찾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뒤떨어짐’을 슬쩍 던져보고자 하는 바 크다.

홍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홍성을 빛낸 역사 인물을 존경하는 마음은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존경하는 방식은 여전히 한발 앞서 있거나, 한 발 뒤처져 있다.

만해 한용운이나 고암 이응노나 한결같이 ‘호(號)’를 불러야 그 존경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지 ‘만해문학체험관’ 또는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미 백담사 만해문학박물관,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이 있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만해문학체험관이라고 부른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명칭이다.

만해는 법호요, 용운은 법명이다. 호적에 오른 이름은 정옥이요, 어릴 적 이름은 유천이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만해를 점유하는 상황에서 굳이 만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용운생가, 한용운기념관이라는 명칭이 오히려 더 정겹다.

고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지적한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대신 이응노의 집, 이응노기념관 그리고 이응노마을 등이 얼마나 따듯하고 매력적인 명칭인가?

다른 홍성의 역사 인물도 이런 식으로 특화한다면 홍성의 찾는 외지 방문객들에게 좀 더 친숙한 홍성의 역사 인물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용운생가지를 다녀왔다. 최근 조성된 한용운역사공원을 둘러보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실망이 컸다. 한용운을 위한 역사공원인지 아니면 삼일운동을 위한 역사공원인지, 의미의 퇴색에 실망했고, 백담사와 심우장 미니어처를 왜? 역사공원에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존의 동상과 흉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고개 숙이고 있는 한용운 동상을 제작해 세운 것은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일명 조선독립 감상에 대한 개요)’ 비를 세워줄 것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여기에 아울러 한용운생가지 민족시비공원 안에 친일 행적이 의심되는 두 시인(유치환과 김달진)의 시비를 없애기를 10여년 전부터 요청했으나,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이유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충남의 중심도시 홍성’이라는 말을 홍성 사람들은 자주 쓴다. 이렇듯 내포신도시가 홍성에 떡하니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충남의 중심도시로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홍성의 여러 가지 오래된 ‘뒤떨어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추후에도 홍성의 여러 뒤떨어짐을 이야기하겠지만, 하나씩 고쳐나간다면 역시 1000년 역사의 홍성, 충남의 중심 홍성이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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