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이 아닌 농업인으로 살았다”
지난달 31일 만난 예산능금농협 권오영 조합장의 소신은 확고했다. 농업인이 잘 살기 위해선 ‘우리 모두’, ‘우리 함께’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나는 농사꾼이 아닌 농업인으로 살았다”는 권 조합장의 말에서 농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권 조합장은 오는 11~12일 열리는 ‘예산황토사과축제’의 성공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권 조합장은 어려서부터 농촌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을 돌아다니며 누구네 닭이 몇 마리인지, 염소가 몇 마리인지, 돼지가 몇 마리인지를 셌다고 한다. 농업인의 꿈을 키우던 그는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5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4-H 활동을 했고, 회장을 맡으면서부터 농업인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과수원집 아들인 권 조합장은 군 제대 후 4-H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아내와 함께 농촌 부흥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돈을 벌면 땅을 사서 과수원을 했다. 3000평 과수원 농사로는 속이 안 차 땅을 더 샀고, 2만평까지 규모가 커졌다.
권 조합장은 “농촌에 살지만 도시 생활자보다 경제적·문화적으로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일해야 하는데 왜 해가 지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며 “열심히 일해 소득도 올려보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연 매출 5억원 달성하는 게 목표다. 2005년 찍은 최고 매출은 3억 8000만원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예산능금농협 대의원과 이사를 오랫동안 했다. 그러다 2006년 처음 조합장이 됐다. 조합장이 된 뒤로는 자신의 연 매출은 감소했고, 5억 달성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긴 힘들었던 것이다.
예산 사과 재배 100년… 좋은 땅, 좋은 맛
올해는 예산 사과가 재배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3년 예산 고덕면 대천리에서 시작해 1941년 35농가가 사과 재배를 시작했다. 1951년 200㏊ 140농가에서 예산과물조합을 결성했다. 예산과물조합은 1958년 예산능금농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1961년 정부로부터 사과 주산단지로 지정받았다.
1972년에는 품종 ‘국광’을 대만에 처음 수출했다. 1983년에는 제1회 능금축제를 개최했다. 1993년에는 수확한 사과를 저장, 선별, 출하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체계인 청과물 유통센터를 지었다. 1995년 사과수출단지로 지정돼 1986농가 2184㏊에서 재배했지만, 2000년에는 1485농가, 1561㏊로 줄기도 했다.
현재는 예산과 당진 42개 작목반 1100여명의 조합원이 1620㏊에서 3만 6000t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예산 사과는 전국 생산량의 5.4%, 충남 60% 점유율을 자랑하며, 2015년에는 기후변화 대응 국내 육성 종품 아리수와 2018년 엔비(128농가), 속 빨간 사과(15농가) 재배 농가를 조성했다. 2019년 예산 황토사과 주스 베트남 첫 수출(4t), 홍로 사과 러시아 수출(4t) 등 대만과 러시아, 베트남 등에 예산 사과를 수출했다.
권 조합장은 예산 사과의 인기 비결로 비옥한 황토밭과 풍부한 일조량을 꼽았다. 예산은 산이 없고, 미네랄과 칼슘 등이 많은 황토에서 재배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특색 있는 대표 품종인 엔비 사과와 속 빨간 사과를 도입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전체 생산량의 70%가 서울 등 수도권으로 출하되고 있다.
“미래 100년 청사진도 함께 써 내려가야”
권 조합장은 WTO, FTA, CPTPP 등의 국제 협약, 기후 위기, 과수 화상병 등이 과수 농가를 압박해오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응 기반을 조성하고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 재배로 연간 1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연작피해 해결을 위해서는 신생지로 옮겨 재배하거나, 각종 미량요소로 토양을 개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권 조합장은 “앞으로 5~6년 후에는 FTA 유예기간이 끝나 관세 없는 사과가 수입된다. 예산은 분명 사과의 고장이지만, 사과만 고집하지 말고 스마트 농업을 통한 전천후 농업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태풍이나 가뭄 등의 영향을 덜 받는 스마트팜이 필요하고, 과수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원예작물과 특용작물, 축산, 경종농업 등을 함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 조합장은 기후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이중 하우스를 지어 체리도 생산해 보고 포도도 생산해야 한다. 사과도 10월 말께 출하되는 만생종보다는 여름에 출하되는 조생종으로 바꿔야 한다. 복숭아는 여름에만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대전에서는 가을에 나오는 복숭아가 있다. 이를 지역에 보급해야 한다는 생각도 전했다. 권 조합장은 “예산 사과 역사 100년을 함께 했듯이 앞으로 100년 청사진을 다시 함께 써 내려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권 조합장은 1989년 국무총리 표창, 1992년 충남 농어촌발전 대상, 1994년 농수산부장관 표창, 새농민상, 2000년 모범충남인상, 1988년 도지사 표창, 2011년 농협중앙회장 공적상, 2014년 산업포장, 2020년 종합경영평가 우수조합장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