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가 시작됐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 싶다. 너무 많은 일들로 일상이 분주해서 그런지 벌써 옛날 일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팬데믹 시기에 우리 사회를 또 다른 충격에 빠트렸던 대형 사건이 있었다. 바로 양천구 입양아동(16개월 정인이)의 학대 사망사건이다.
그리고 그즈음, 우리나라는 2019년 발표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따라 아동보호 체계의 전면적 개편을 단행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것은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공공화’이다. ‘공공화’란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인데 특히 아동학대 의심 사건에 대한 조사와 학대 판단을 공공이 직접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담했던 아동학대 신고 사건에 대한 조사와 이후 사례관리를 분리했고,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에 아동보호팀을 설치해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아동보호전담요원을 별도로 배치했다. 그리고 신고된 학대의심 사건을 경찰과 지자체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이 조사해 학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 229개의 지자체에 아동학대전담공무원 765명과 아동보호전담요원 715명이 배치돼 있다.
이렇게 개편된 공공화된 아동학대 대응체계는 긍정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 전반의 민감성이 높아지면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가 많이 늘었다. 특히 제도 시행 후 첫해인 2021년도에는 전년 대비 27.6%나 늘었다. 아동학대 신고율이 늘어난 것은 팬데믹으로 인해 아동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전에 비해 아동학대가 늘어난 측면도 있겠지만, 그동안 인력과 조직 등의 한계로 인해 드러나지 않거나 간과됐던 아동학대 상황이 지자체별로 더 면밀하고 촘촘하게 파악되면서 아동들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가능성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 비해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아동복지전담공무원과 아동 본인, 그리고 부모의 인지 신고율도 높아졌다. 이전에 비해 신고된 아동들의 원가정 보호율 및 가정보호율도 늘었다(2019년 12.3% vs 2022년 39.0%). 무엇보다 기초지자체가 전면에 나서면서 전체 아동보호 체계의 유기적 협력 수준이 이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아직 부족한 면도 많지만. 학대 위험 수준이 높다고 판단된 아동의 즉각 분리, 분리된 아동의 일시보호와 장기 시설보호 체계의 연계, 학대가 발생한 가정 및 아동에 대한 안전 점검 및 사례관리, 원가족 복귀를 위한 서비스, 시설에서 보호종료된 아동들의 자립 지원까지 지자체 아동보호팀(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및 아동보호전담요원)의 주도하에 이전보다 더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동보호 체계의 문제점과 현장 인력들이 경험하는 어려움들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동의 보호나 이익보다는 추가 학대로 인한 책임성을 피하기 위해 이뤄지는 과도한 분리조치, 동행출동 및 학대신고 조사를 둘러싼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간의 갈등, 부족한 아동보호 시설로 인한 어려움, 학대로 기소된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단, 사례관리의 범위와 내용 등에 대한 지자체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의견 불일치와 갈등 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현장 인력의 이탈률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뿐 아니라,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 경찰의 학대예방경찰 등 모든 주요 영역에서 인력들이 계속 바뀐다. 2021년 기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86.8%가 20~30대 나이로 보통 관련분야 경력이 2~3년 정도이고, 2020년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이직률은 34.4%로 해마다 3명 중 1명이 퇴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근속연수도 3.4년에 불과하다.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은 공무원들의 특성상 2년 정도를 주기로 보직 이동을 하게 되는데 높은 직무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부담 등을 이유로 병가 혹은 육아 휴직을 하거나 보직 이동을 신청하는 인원이 많아 실제 근무연수는 이보다 더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대예방경찰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의 교체율은 1년 미만이 45%, 2년 미만이 68%이다(2021년 4월 기준). 아동학대 업무의 특성상 관련 인원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매우 요구되지만, 실제로는 매해 높은 수준의 인력변동 속에서 신입들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현재 제도하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가 사실상 인력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한 아동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높은 책임감과 부담감 속에서 일을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일의 절대량과 야근이 너무 많다. 주말과 휴일에도 쉬기 어렵다. 사건이 발생하면 365일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대로 신고된 부모들이 조사나 사례관리 등을 거부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별로 없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성 민원들과 행정적인 이슈들도 담당자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나아가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담당 아동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 비난 여론이 매우 거세지는데 (이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조직이 이를 함께 책임져 주기보다 자신 혼자 잘못을 떠안게 될 거라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제도가 좋아져도 그 제도를 제대로 실행해 나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인원 충원을 계속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도 안에 들어온 인력이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2024년도 한 해는 피해아동과 가족의 회복, 건강한 삶을 돕기 위해 애쓰는 우리 현장의 인력들에게 도움이 되는 더 실제적인 변화들이 함께 이뤄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