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은 감정의 동물, 자주 표현하자
[칼럼] 인간은 감정의 동물, 자주 표현하자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9.2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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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현 홍성군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추석 전 고모님의 장례를 치렀다. 고향집 지척에 사시는 고모님과는 왕래가 잦아서인지 보내드려야 하는 슬픔은 컸다. 고모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작별을 고하고 싶어 입관 절차에 참여했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 고모님을 두 딸, 사위, 손주, 친인척 순으로 마주하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나는 한 발치 떨어져서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요,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온다. 어쩌면 생각한 것보다 빨리 찾아올지 모른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데 왜 우리는 이러한 감정표현에 이토록 인색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감정표현에 서툴다. 유교 문화의 영향 탓인지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타인에게 표출하는 게 조심스럽다. 남자들은 더욱 그렇다. 보통 태어났을 때 한번,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한번, 나라가 망했을 때 한번, 남자는 이렇게 총 3번 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가계의 계승자로서 가족의 보호자로서 가부장제로 인한 권위를 생각해서 슬픔의 표현도 자제하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데 지역문화의 차이도 있는 거 같다. 얼마 전 어느 행사장에서 서울, 강원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10년 전 태안군 남면에 내려와 펜션업을 하고 있다는 분을 만났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아는 이 없는 낯선 지역에 정착하여 살다 보니 원주민들과의 갈등 해결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려(겨)~’로 대표되는 대답은 해도 된다는 건지, 안 해도 된다는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고 말해 함께 자리한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지역 발전과 복지 증진을 위해 주민자치회 회장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장을 맡고 있음에도 이방인 취급받을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강원도를 오가면서 춘천 닭갈비 100㎏ 정도는 마을 어르신들께 선물로 전해 드렸다는 후일담까지.

우리 충청도는 양반 문화(?)가 뿌리 깊어 타인에게 속 사정을 쉽게 터놓지 못한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은 싫다. 특히 슬픔, 괴로움, 고통, 분노, 짜증, 고민 등 인간의 여러 감정 중 부정적 표현들은 마음속으로 감추기 일쑤다. 정확한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노인 자살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 우리 충청남도인 것은 과연 우연의 결과일까? 자기의 어려운 상황과 속내를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터놓지 못하는 심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국내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50명당 1명꼴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 짊어지고 서 있는 듯하다. 아픔 감정과 마음을 정신과 의사나 사례 관리사와 나누었다면 그나마도 다행이다. 표현하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것이다. 긍정적 감정표현은 어떤가. 이번 추석 명절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눠 먹었다. 모처럼의 한솥밥이었다. 다양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보고 싶었다’, ‘즐겁다’, ‘행복하다’, ‘사랑해’라는 표현은 얼마나 했나 되뇌어 보시라. 인류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촌에서 최고 포식자가 되고, 문명 발전을 이룩한 여러 요인 중의 하나로 타인과의 의사소통과 협력, 같은 종을 인식하는 능력, 타인의 표정, 몸짓, 언어를 듣고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위대하고 놀라운 감정 표현 능력을 우리는 애써 숨기고 감추려고 한다. 인간의 감정은 뇌의 다양한 영역과 화학적인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 뇌의 특정 부위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신경 세포 간의 신호 전달이 일어나면서 감정이 형성된다. 대표적으로 ‘도파민’, ‘세로토닌’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 물질로 행복감과 즐거운 기분 등을 느끼게 하는데, 자원봉사 활동 직후 높게 관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애써 감출 필요가 있겠는가. 화가 나면 어떤 이유로 화가 나는지 설명하고, 슬픈 감정이 끓어오를 때는 참지 말고 눈물 흘리며 한바탕 울어보자.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자. 지금 당장 휴대전화에 대고 말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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