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하면 육군훈련소? 알고 보면 인문학 도시!
논산하면 육군훈련소? 알고 보면 인문학 도시!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9.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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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답사 ⑪논산

‘여행’은 우리들의 여가 활동 가운데 중요 선택지다. 유럽도 좋고 동남아도 즐겁고 가까운(?) 중국·일본이나 제주도 역시 끌리겠지만, 좋은 여행이 꼭 그 이동 거리로 담보되진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명소를 두고 사서 고생할 수도 있다. 내포뉴스는 월 1회 홍성과 예산을 제외한 충남의 시·군들을 답사(踏査)해 전하고 있다. 내포뉴스가 열한 번째로 선택한 곳은 ‘논산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 완성을 기념해 세운 ‘개태사’. 사진=노진호 기자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 완성을 기념해 세운 ‘개태사’. 사진=노진호 기자
1944년 고철로 쓰기 위해 부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 벼락이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개태사 ‘철확’. 사진=노진호 기자
1944년 고철로 쓰기 위해 부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 벼락이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개태사 ‘철확’. 사진=노진호 기자

◆고려 태조 왕건이 지은 ‘개태사’… 의미도 느낌도 남다르다

논산에서 처음 발길이 향한 곳은 ‘개태사(開泰寺)’다. 논산시 연산면 천호산에 자리 잡은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물리치고 후삼국 통일의 완성을 기념해 창건한 곳이다. 왕건이 직접 지은 ‘개태사 화엄법회소’에 따르면 부처님의 가호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통일의 대업을 이뤘기에 절이 있는 산의 이름을 ‘천호’, 태평성대를 연가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개태’라고 지었다고 한다. 개태사는 고려 통일 후 수도인 개경을 제외한 지역에 처음으로 국력을 기울여 세운 절이고, 후대에 고려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진전 사찰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고려 때도 이곳은 매우 중요시해 공민왕은 강화도로 천도하려는 마음으로 개태사로 사람을 보내 점을 쳤다는 기록도 있다.

개태사는 큰길 옆 주차장에서 몇 걸음 안 옮기면 바로다. 필자처럼 걷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장소다. 이곳에는 신종루 법종과 어진전,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 대웅보전, 철확, 5층 석탑, 고려 태조 상소문 비석 등이 있다. 법당 내에 있는 석존여래삼존입상은 느낌이 남다르다. 뭔가 더 장엄하면서도 평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법당 내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담아오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다. 직경 289㎝, 높이 96㎝, 둘레 910㎝의 철확도 눈여겨볼 만하다. 부엌에서 사용했다고 알려진 이 무쇠솥을 1944년 고철로 쓰기 위해 부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 벼락이 쳐 그대로 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래된 배롱나무가 인상적인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집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오래된 배롱나무가 인상적인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집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조선시대 양반집 ‘명재고택’…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힐링

열한 번째 충남 답사의 두 번째 여정은 ‘명재고택’이었다. 이곳에 가려면 궐리사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도보로 150m쯤 이동해야 한다. 물론 힘들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길이다. 조선시대 학자 윤증 선생 생전인 1709년 지어진 이곳은 전형적인 상류층의 살림집이다. 사랑채 앞 촉대와 우물, 연못과 나무에서 조선시대 정원 조경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잘 알려져 있으며, 후원의 장독대와 소나무 숲까지 조화롭다. 거기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고택의 고즈넉함을 더해준다.

명재고택 안채는 디귿 자형, 사랑채까지 포함된 구조는 미음 자형의 목조 기와지붕 단층 건물이다. 사랑채 큰 방과 작은 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한 방문은 다른 한옥에서 볼 수 없는 독창성이 뛰어난 건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재 건물은 수리해 19세기 건축양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 기법은 18세기 양식이다.

고택은 취향에 따라 푹 빠져서 머무르기도 하고, 심심해서 실망하기도 한다. 해설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 명재고택에선 한옥 스테이와 다례와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체험도 할 수 있으며, 전망대와 선비 계단, 궐리사 등으로 이어지는 사색의 길도 날씨만 도와준다면 아주 좋다.

인조 12년 창건된 돈암서원은 2019년 여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인조 12년 창건된 돈암서원은 2019년 여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돈암서원’… 조선의 정신, 어떤 모습일까

명재고택을 나와 향한 곳은 ‘돈암서원’이다. 이곳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에 대해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인조 12년(1634년) 창건된 돈암서원은 조선 중기 대표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 유학의 대표적 서원이다. 현종 원년(1660년) 사액 받았으며, 고종 8년(1871년) 흥선대원군이 전국 650여 서원에 훼철령을 내려 47개만 남겼을 때도 명맥을 유지했다.

돈암서원은 주차장에서 250m 정도를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뭔가 공부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서원 경내는 홍살문과 하마비, 입덕문, 응도당, 정회당, 장판각, 내삼문, 숭례산, 양성당, 돈암서원 원장비, 거경재, 정의재, 전사청, 경회당, 산앙루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예학을 건축으로 표현한 강학당인 응도당의 탁월함이 유명한 곳이 바로 돈암서원이다.

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다. 조선 중기 사대 사화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으로 학자들이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는 기능까지 통합한 서원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원은 지방 인재들이 모이는 집회소이기도 하고, 도서관이자 출판사이기도 하다. 지역 여론을 이끌기도 했고, 지방별 향약을 기준으로 교화 활동도 했다. 요즘 뉴라이트네 뭐니 해서 조선에 대한 평가가, 역사에 대한 말들이 혼란스럽다.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조금 더 신중히 판단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계백 장군 유적지에 있는 장군의 동상. 논산시 제공
계백 장군 유적지에 있는 장군의 동상. 논산시 제공

◆5천 결사대의 혼 담긴 ‘백제군사박물관’… 역사를 더 재밌게

열한 번째 충남 답사의 마지막 여정은 ‘백제군사박물관’이었다. 이곳은 계백 장군 유적지 중 하나이며, 장군의 묘소와 영정을 모신 충장사, 황산벌 전적지가 내려다보이는 황산루 등과 함께 있다. 장군의 길로 출발하는 박물관 1층에선 그 역사와 군사 문화 등을 볼 수 있으며, 게임을 통한 재미있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긴 설명보다 박물관에 새겨진 기록 중 일부를 옮긴다.

‘660년 7월 9일 오뉴월 염천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5000의 백제군과 5만의 신라군이 좁디좁은 황산벌에서 맞섰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한 만큼 백제군은 10배나 많은 신라군과 4번 싸워 4번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되자 신라는 다급해졌다. 당나라 군대와 7월 10일에 사비에서 만나기로 한 만큼 황산벌에서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관창이 혼자서 말을 타고 백제군을 향해 돌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관창의 죽음을 계기로 신라군은 인해전술을 구사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백제의 결사대였지만 황산벌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2층은 조금 색다르다. 우선 논산에 스며든 백제 이야기가 있는데 성동면 우곤리에 전해지는 지네산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 전설은 홍수가 나면 출몰하곤 했던 이무기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켜준 지네에 관한 이야기다. 또 황산벌 10인의 인터뷰도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여기서 황산벌 10인은 의자왕, 계백, 의직, 충상, 상영 등 백제 인사와 소정방, 관창, 김유신, 흥수, 성충 등 나당 연합군 측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논산에는 관촉사 은진미륵, 탑정호와 출렁다리, 대둔산 수락계곡, 쌍계사, 강경포구, 선샤인랜드, 종학당 등 갈 곳도 볼 것도 많다. 가을이 더 무르익으면 재미도 분명 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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