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거주·이동 제한 등 문제 산더미
남지현 연구원 “그저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인구 감소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2020년 사상 첫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것)’ 발생으로 생산연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마저 우려되고 있다. 충남도는 인구소멸 위기 대응과 지역 경제 활성화, 사회통합 촉진 등을 위해 이민청 유치와 진일보한 이민정책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내포뉴스는 총 8회에 걸쳐 충남도의 이민정책과 이민자 인권 보호, 도내 다문화가정 지원 현황 등을 전한다.
2022년 11월 1일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충남 도내 외국인 주민은 13만 6006명으로 전체 도민의 6.2%다. 이는 2011년 5만 7869명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E-9(비전문취업) 비자 발급은 2만 7021명이고, 올해 7월 기준 도내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5068명이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2018년(49명)보다 103배 이상 늘었고,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한 비자 발급 역시 증가하고 있다.
내포뉴스는 이민정책에 대한 연재를 이어가며,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에 와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 문제도 살펴봤다. 이번 취재는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는 ‘충청남도 노동자 권리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에 따라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가 수탁 운영하고 있다. ‘노동자의 내:일을 다르게’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센터는 노동정책연구와 노동법률지원, 노동인권교육, 감정노동권익지원, 노동기본권캠페인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남지현 정책기획팀 연구원은 이주노동자 인권과 관련해 ‘거주 문제’를 먼저 꼽았다. 남지현 연구원은 “거주시설 제공에 대한 의무가 없기도 하고, 고용주가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해도 문제가 많다. 비닐하우스가 컨테이너에 사는 등 매우 열악한 현실”이라며 “정부는 지난해 10월쯤 새 업무지침을 마련했지만, 강제성은 없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해 ‘이동의 제한’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한다. 남지현 연구원은 “사업주 동의 없이는 이직을 못 하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현대판 노예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정부·지자체의 권역화 결정으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이전에는 전국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이제 충남, 전북 등의 범위로 묶였다. 잦은 이탈은 숙련도를 떨어뜨린다는 사업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인데 환경 개선은 없이 차단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지현 연구원은 또 “이주노동자의 증가와 법·제도적 정비가 비례하진 않는다. 이대로 가면 문제는 더 커지기만 할 것”이라며 “정부나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값싼 노동력으로 본다. 그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는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다른 내:일 배움과정 ‘노동을 해방, 노동은 해방’을 진행했다. 이 중 9월 12일 열린 네 번째 시간에서 이주노동이 다뤄졌다.
당시 강사로 나선 김희정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장은 “정부 정책이 이주노동자의 불법성을 생산한다. 외국인이란 인식 그 자체로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며 “자본주의에서 이주노동자는 또 다른 불안정노동자”라고 말했다. 이어 “‘이주’를 떼면 그냥 노동자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고용허가제가 노동자를 노예화한다”며 매일 10시간씩 월 28~29일을 노동하고, 1주일에 하루는 농장주 아들 속옷 빨래 등 가사노동까지 했음에도 폭행과 해고를 당한 충남의 사례를 전했다. 김 대표는 “2017년 후 노동부 확인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이 해마다 약 1300억원”이라며 “해법은 연대, 학습, 투쟁이다. 연대 정신이 자신과 동료 노동자의 생명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는 지난해 12월 ‘영원한 한때 – 우리 지역 이주노동자의 일과 삶’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귀여운 딸내미들의 아빠 아민, 고용허가제 통해 한국에 들어와 불법 체류자가 된 소치타, 어업에 주로 종사하는 판 이 치아오,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 말리다, 일하다 왼손 약지가 잘린 미등록 이주노동자 레 꽁 바오, 한국에서 당당히 일하고 싶었던 베트남인 코이, 아이를 위해 한국에 살고 싶은 나란튜야, 김병화 마을의 아이 고려인 박에빌리나, 외국인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한국인 이시은 씨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상식적으로 이들을 대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다.
이 책 출판에 참여한 남지현 연구원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하며 한국 뿌리산업을 담당하는 필수 인력인 이주노동자들의 소망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동정이나 특별 대우가 아닌 그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대해주는 것. 노동력이 아닌 노동하는 인간으로 사는 것. 이 땅의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인간답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취재는 2024년 충청남도 지역 미디어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