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인생
감동을 주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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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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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오(홍성성결교회 담임목사)
이춘오(홍성성결교회 담임목사)
이춘오(홍성성결교회 담임목사)

내가 가끔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미스터 트롯과 불후의 명곡이다. 이 두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늘 나에게 도전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늘 반성하게 해 준다.

미스 트롯이 대박을 터트리더니 미스터 트롯까지…. 지상파 방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토요일 저녁 먹을 때 쯤 방송되는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랫말 한 구절에 시청자들과 관람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4분짜리 노래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서 감동을 안겨 준다. 가수의 노래 하나에 울고 웃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나는 늘 반성을 한다. 가수는 4분짜리 노래 하나로 감동을 주고 희열을 느끼게 하는데 목사인 나는 30분짜리 설교를 하는데 왜 감동을 주지 못할까? 4분짜리도 감동을 주는데 30분짜리에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내 무능함이 보여 반성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감동의 목마름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작은 감동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한 교민들을 철수 시켜 아산과 진천 그리고 이천에 2주간 집단 수용할 때 처음에는 반대도 있었지만 누군가 올린 글 귀 하나가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왔다. “우한 교민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들도 우리의 가족입니다” 그리고 여론이 돌아섰다. 글 하나에 감동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여인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할 때 모든 사람들이 집어들었던 돌을 버리고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들도 어쩌면 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포용해 주는 모습은 지역을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십자가는 감동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자체가 감동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당간의 치졸한 기 싸움들이 진행되고 있다.

마치 씨름 선수가 씨름의 기술보다 샅바 싸움에 진을 빼면 청중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것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정치의 내용보다 샅바 싸움에만 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느낀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샅바 싸움 하지 않아도 이길텐데….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감동을 전달하는데 꼭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에 감동이 전달된다. 진심어린 격려 한마디에 전율이 느껴진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타인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적이 많은가? 아니면 감동을 준 일이 더 많은가?

감동을 주는 인생, 감동을 나누는 교회, 감동을 선물하는 사회가 된다면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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