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와 예술에서 문화 구하기
[기고] 정치와 예술에서 문화 구하기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0.12.21 15: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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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석 동북아시아문화허브센터 서울지회장(화가)

지역의 분권이란 한 지역이 자기 의사결정권과 예산의 자유로운 집행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이 분권이란 담론이 시대적 의제로 실행 중에 있다. 어찌 보면 초기의 단계를 막 벗어났다 할 수도 있고 초기의 난관을 극복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새로운 단계란 새로운 생각의 지점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1982년 프랑스 지방분권을 선언한 미테랑 대통령의 국가정책 화두는 문화국가 프랑스였다. 또한 공익이라는 말을 구체화시키고 정교화시키기 시작한다. 분권이 문화로 그리고 공익으로 정교화시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역의 분권이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자기 지역뿐 아니라 남의 지역을 알아가는 성숙한 능력을 갖추어 독단적 사고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분권 정신은 근본적으로 개별의 자유에 가깝지만, 이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협상 능력과 연대를 문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고 그 중심에 공익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12월 8일 홍성군에 있는 노동문학관에서 동북아시아문화허브센터 충남지회가 창립되었다. 이 단체는 국내의 문화단체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단체를 포함한 연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모든 단체의 중심은 스스로의 자신들이다. 하지만 이 쉬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실행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마치 지역분권이 새로운 단계로 이제야 접어들었듯 아직 많은 시행착오와 생각의 깊고 정교한 실천의 경험이 부족한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의 정체성은 여전히 문화이다. 문화를 대표하는 중심과 핵심이 예술인 듯 오해했던 시대가 있었다. 아직도 문화재단이 예술재단으로만 인식하듯이 문화가 예술에게 갇혀버리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대중의 삶과 동떨어지기 십상이다. 대중과 동떨어지니 예술의 발언권은 삶에 공허한 것이 되거나 대중의 삶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대중은 예술을 별개로 여기거나 이것이 문화라고 오해하여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예술 또한 대중의 삶에 그 주제의 토양을 뿌리 깊게 내리고 있지 못하거나 주제로 가져가는데 망설이기 일쑤다. 다소 특별한 건 우리의 예술가들이 사회변혁에 있어 정치의 역할과 변화를 통감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요 주제로 삼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 전문가 운동의 특별한 주제가 우리 예술사에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의 문제는 그 예술을 정교함과 성숙한 문화로 확장하는 것이다.

만남은 실제이고 현실이며 그 자체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교류의 장이다. 그동안 남북 정상의 만남(회담)은 분단 70여년 중 제1차 2000년(평양), 제2차 2007년(평양), 제3차 2018년(판문점), 제4차 2018년(판문점), 제5차 2018년(평양)으로 근래에 많은 횟수와 생생함을 배가시켜주었다. 남북 국민들에게 두 정상의 만남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그야말로 일상을 파고드는 낯익은 것이 되고있는 것이다. 트럼프 시대를 지나 이제 바이든의 시대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미국의 존재가 깊이 인식되고 그 부작용과 방편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줄 아는 시대로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만이 아닌 주변국과 핵심 담당 국가를 인식하고 대중이 묘안을 일상적으로 논의하고 함께 대책을 세워나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양당의 후보를 저울질하고 또한 한반도의 입장에서 영향을 끼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과 스스로의 여론 형성을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회담이 정치에만 갇히는 것이 아닌 대중의 다양한 문화로 녹여 내는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바이든의 시대를 수동적으로 막연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가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정치는 판을 여는 최소한의 수단 정도일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을 잘 알아야 우리의 문제를 정교하게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의 정치와 그보다 많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다양성이 될 것이고 상호 간의 이해력을 높여 공익과 공존의 논리를 생산하고 그 논리를 일상으로 끌어내려 정교한 예술들이 꽃피울 것이다. 허브센터는 중국말로 바퀴통의 중심이란 뜻이다. 모두의 이해를 모으는 역할은 굳이 한나라에서만 할 필요가 없다. 제각각의 나라는 바퀴통의 중심이 되지만 가끔은 바퀴통의 살이 되어 여러 바퀴를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는 역할도 때로는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알리기 전에 남을 알아가는 교류가 첨단이 되고 미래를 사는 것이라 믿어본다.

 

배인석 화가, 동북아시아문화허브센터 서울지회장
배인석 화가, 동북아시아문화허브센터 서울지회장

■ 배인석 : 1968년 대한민국 출생으로 1회 개인전 이 후 “나를 둘러싼3가지상념들”/ “퇴계하여 평택을 생각한다”/ "학생대백과사전"/용산 레아 끝나지 않은 전시/청와대 라이터 프로젝트_제 값에 팝니다! value of the Blue House/3.8.6 드로잉등의 주제로 7번의 개인전을 하였으며,85호 크레인 - 어느 망루의 역사(서울,스페이스99)/액티비스트 리포트(부산,대안공간반디)/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부산,광안리)/백두대간 지리산 전(전북도립미술관)/경기 국도1호선(경기도미술관)/딜레마의 뿔(서울,일민미술관)/조국의 산하-평택 평화의 씨를 뿌리고(평택,대추리)/7인의 사무또라이전(서울_가나인사아트센터)/키워드 한국미술 2017-광장예술: 횃불에서 촛불로(제주_제주도립미술관) 등에 출품을 하였다. 저서로는 신속한 파괴 우울한 창작(2008/도서출판 인디)이 있고 글쓰고,일하고,놀고,술쳐묵고,씨부리기도하는 화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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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arak 2020-12-22 00:35:4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