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풍요와 빈곤
[칼럼] 풍요와 빈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3.2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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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암 선준 스님

햇살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앞 다퉈 피고 있는 수선화·목련·진달래·개나리를 보며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산도 들도 바다도 봄소식이 가득하듯 세상에는 새로운 정보와 발명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쓰는 것도 머무는 것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고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자연은 그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며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도 사람들은 너도나도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을 향해 속도만 낼 줄 알았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래서 망가질 대로 망가져 현상유지가 어려워지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고 돌연변이가 속출하고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환경파괴로 곳곳에서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쓰나미, 산사태, 홍수, 열대야, 땅꺼짐 등이 우릴 놀라게 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하다가 현상유지를 위한 몸부림의 결과물이다. 지난해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물적, 심적으로 많은 상처를 남겼고, 변이를 계속하며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다.

필자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왔을 때 조금은 미안하고 설레기도 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공격해서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두려 했을까?

우리를 집에 가둬두고 “너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밖에서 해결하다보니 자꾸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나를 치장하고 포장하느라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나의 내면이 풍요로워지면 나의 겉치레는 좀 단순해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덜하고 덜 불안해하고 잘 적응해서 내가 좀 더 안정될 것 같다. 이제 코로나19가 던진 화두를 각자의 성향대로 잘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다보면 코로나19도 자연의 일부로 공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나름의 지혜로 고대로부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편리한 오늘을 맞아 살고 있다. 하지만 불편함이 새로운 편리함을 만들고 편리함도 때로는 누군가를 짓눌러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일 역시 늘 우리 곁에서 함께하며 존재한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풍요로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우린 좀 더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함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나도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늘 생각하면서 좀 쉬어갔으면 좋겠다. 하물며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랴. 나의 풍요를 위해 지나치게 나 이외의 것을 취하려 한다면 나 이외의 것들은 모자라게 되고 균형이 깨져 기이한 현상들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나의 수고로움이 그것들을 메워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풍요로우면 나 아닌 어떤 것인가는 빈곤이라는 이름표를 이미 단 것이다. 결국 풍요와 빈곤은 자연 안에서 하나이니까. 우리가 자연의 일부인 채로 살아가는 이상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이라도 나를 놓치지 말고 잘 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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