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농촌 없는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칼럼] 농촌 없는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5.17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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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독일에서 공부했던 교수 한 분과 통화를 하는데, 독일과 한국 농촌을 비교하는 얘기를 들었다. 독일 농촌은 생활환경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고, 그래서 도시 사람들도 시골로 가거나 시골에서 머무르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한국의 농촌을 생각해 봤다. 한국 농촌도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각종 환경오염시설, 폐기물처리시설, 발전소와 송전탑, 대규모 축사로 인해 생활환경이 많이 악화됐다. 대도시에 가까울수록, 도로가 잘 뚫릴수록 그런 시설들이 들어설 가능성은 높아진다.

며칠 전에도 충북 괴산의 한 농촌마을 이장님에게 메일을 받았다. 그곳에 54만평 규모의 산업단지가 들어서려고 하는데, 194만t 규모의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계획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면 산업단지 자체보다도 더 큰 이권이다. 매립장 운영 업체가 벌어들일 순이익만 해도 수천억원대에 달한다.

그런데 산업단지 예정지 부근에는 마을도, 어린이집도, 학교도 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과연 이곳들은 어떻게 될까? 또 산업단지 예정지 안에는 20만평의 농지도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임야이다. 농지와 숲이 대규모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게 괴산만의 일은 아니다. 충북, 충남, 경남 등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가까운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업폐기물매립장 문제만 봐도 충남은 심각한 문제지역이다. 당진에는 500만t 이상 어마어마한 규모의 매립장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서산에서도 산업단지 내 폐기물매립장 용량을 4배 이상 늘리려는 업체가 몇 년째 행정관청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홍성군 갈산면에서도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다가 금강유역환경청의 ‘부동의’로 일단 백지화 됐다. 예산군도 산업단지로 인한 주민피해가 크다.

이런 시설들로 인해 농촌의 생활환경이 악화돼도 문제가 없을까? 인류의 역사를 보면 도시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있지만, 농촌 없는 사회는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다. 작은 도시국가라면 모르겠지만, 일정규모 이상의 인구가 먹고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농촌은 그 근본이고, 생존기반이다. ‘식량은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식량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농촌과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의 근본과 생존기반이 파괴되고 있는데도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행정의 문제가 심각하다. 농촌 대변은커녕 농촌을 파괴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도 심각성을 못 느끼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최근에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산업단지 안에 설치되는 폐기물매립장이 산업단지 바깥의 산업폐기물도 받아들이게 하는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폐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역주민들이 ‘산업단지 안에 설치되는 폐기물매립장은 그 산업단지 내의 폐기물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아예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단지 내에 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큰돈을 벌게 되지만, 주로 농촌지역에 설치되는 산업단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업폐기물이 매립돼 수질오염과 악취피해, 농업피해를 키우게 될 것이다.

지자체 행정도 마찬가지이다. 농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빈약하다보니 부실한 행정으로 환경오염 시설들에 대해 초기대처를 잘 못하는 경우들을 흔히 보게 된다. 돈을 벌려는 업체들은 대형로펌을 선임해가며 필사적으로 나오는데, 행정의 대처는 안일한 것이다. 이제는 지자체도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각성을 해야 한다.

2018년 12월 유엔총회를 통과한 ‘유엔농민권리선언’에서는 “국가는 위험물이나 폐기물이 농민들의 땅에 매립되거나 버려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이 유엔 결의문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지키려고 노력하는 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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