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덩이가 굴러 눈사태가 될 때
[칼럼] 눈덩이가 굴러 눈사태가 될 때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5.24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재영 홍성YMCA 사무총장

충남도 산하 단체인 충남종합건설사업소(이하 사업소)가 지난 4월 22일 금마~홍동~장곡을 관통하는 609번 국도 옆 잡초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제초제를 살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제초제가 뿌려진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5일 뒤 도로 옆 풀들이 붉게 변색해 죽어가자 지역주민들이 인지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홍성군은 언제나 홍성이 최초의 유기농 특구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왜 유기농 특구에 제초제가 살포됐을까? 609번 국도는 홍성군 지역이지만, 국도는 사업소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홍성군은 홍동에 609번 국도가 안 보인 것이고, 사업소는 609번 국도만 보였다. 사업소의 업무는 국도 관리이기 때문에 가장 싸고 쉬운 방법인 제초제를 살포했다. 홍성군은 제초제가 살포된 이후 농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서 인지했다.

사건은 간단한 ‘인재(人災)’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있다. 유기농 농업은 매우 까다로운 인증 절차에 따라 관리 및 유통된다. 토양에서 0.01ppm만 검출돼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고 설령 검사에서 제초제 성분이 나오지 않아도 제초제를 뿌린 것만으로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옆 논에서 제초제를 뿌리다가 바람을 타고 넘어와도 인증이 취소되고 비가 올 때 제초제가 하천에서 흘러 들어가 유기농 농업지역에 스며들어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그래서 유기농 농업지역은 공동체성이 강조되고 집단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제초제가 뿌려진 것이다. 609번 국도는 옆에 농업용 수로가 있는 곳도 있고, 유기농 특구 지역을 관통한다. 홍성군 유기농 생산지가 전체 농업 생산지에 5%이고 이 중 대부분이 홍동·장곡지역이기 때문에 이번 일은 가히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소 측은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잡초를 직접 제거하기로 약속하면서 피해보상도 언급했다. 하지만 유기농 생산물을 인증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도 같은 생각일까? 사업소가 잘못했다고 인정했다고 흙에 뿌려진 제초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유기농 생산물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저농약 생산물로 인증된다면, 그래서 생산물의 가격이 내려가 농민들이 피해를 보니 그것을 사업소가 금전 보상을 해준다고 하면 유기농 농업지역은 괜찮을까?

재발 방지 약속은 필연적으로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 하는 것이다. 이미 사건은 터졌고 재난이 일어났다. 홍성에서 유기농 농산물 생산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한 농민들의 땀방울이 재발 방지의 약속 앞에서 눈물로 바뀔 일이 다음에는 없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