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원삼국시대 환호취락 ‘묻혀있을지도 모를’
국내 최대 원삼국시대 환호취락 ‘묻혀있을지도 모를’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5.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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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역사관 ‘석택리…’ 특별기획전 11월 말까지
박보람 학예사 “고고학적 가치 커… 발굴 이뤄지길”
지금 홍주성역사관에 가면 마한의 시간으로 여행할 수 있다. 사진은 기획전시실. 사진=노진호 기자
지금 홍주성역사관에 가면 마한의 시간으로 여행할 수 있다. 사진은 기획전시실. 사진=노진호 기자

고대 홍성 지역, 마한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홍주성역사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홍주성역사관은 오는 11월 30일까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석택리, 홍성의 마한을 기억하다!’를 진행한다. 내포뉴스는 박보람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자세히 전시를 살폈다.

다만 석택리 유적에 대한 많은 내용은 추정하고 있는 것임을 밝혀둔다. 그것은 ‘이 중요한 유적’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태적 완성도가 높은 국내 최대 규모 원삼국시대 환호취락.’ 이번 특별기획전의 의미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말이다. 홍성 석택리 유적은 내포신도시 건설사업 중인 2012년 1월부터 2013년 4월 12일까지 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의 환호취락과 분구묘군, 백제시대 석곽묘, 고려~조선시대 분묘 등 총 1072기의 유구(遺構)가 확인됐다.

박보람 학예사는 “석택리 유적은 홍북터널 바로 위에 위치해 있고, 내포~예산 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수차례에 걸친 문화재 심의위원회 회의 끝에 환호 중심으로 반경 50m 범위를 원형보존 지역으로 지정하고 발굴조사를 중지했다. 일단 덮어놓은 상태인 것”이라며 “환호의 외형이 이렇게 완벽히 남아있는 곳은 드물고, 원삼국시대 취락 중 분묘·주거·생산·의례 등이 가장 정형화 된 구조로 발견됐다. 그만큼 고고학적 가치가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홍성 지역에 매우 중요한 자료인데 발굴이 완료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당시 왜 조사가 중단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더했다.

홍주성역사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역 발굴 유적을 테마로 정하고, 3개월 정도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박 학예사는 “석택리 유적은 과거의 건축양식이나 의례생활, 경제행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구’ 자체가 가장 중요한 곳이다. 관람할 때도 그런 것들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홍주성역사관 기획전시실로 들어서면 석택리 유적 발굴지도가 먼저 보인다. 이 중에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수레바퀴 흔적이 있는 도로’와 토기 가마 3곳(초록색)을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박 학예사는 “환호 출입구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른다. 다만 도로와 토기 가마 인근에 설치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 환호취락은 3세기 중엽~4세기 중엽, 즉 마한의 시간 속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 한반도 지도로 전시가 시작되는데, 이 지도는 중국 위서동이전을 참고했다고 한다.

석택리 유적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석택리 유적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석택리 유적의 환호는 외환호 기준으로 장축 155m, 단축 70~90m, 추정둘레 약 400m 정도다.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유적지 전체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다.

환호란 마을을 보호하는 시설로 물이 없는 도랑이다. 성 밖을 둘러 판 ‘해자’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도 있다. 박 학예사는 “이곳 환호는 내·외환호로 나눠져 있는데 특이한 형태다. 확장의 결과물로 추측할 뿐”이라며 “목익(나무말뚝)과 목책(나무울타리)의 흔적으로 그 방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북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4㎞쯤 떨어진 석택리 유적은 넓고 완만한 정상부 중심으로 자리해 사주경계를 위한 시야확보가 탁월하다. 수량이 풍부한 삽교천과 신경천이 주변에 있어 농경 중심 생활에도 용이하다. 이곳에 대규모 취락이 형성된 배경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 230기가 나왔는데 환호 내부에 174기가 있으며, 동쪽 외환호 경계로 50m쯤 떨어진 곳에 34기가, 22기는 2~4기씩 구릉지에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다.

박 학예사는 “석택리 유적에서는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때토기, 장란형 토기, 넓은 입 항아리, 시루 등도 발견됐다. 이 중 큰독은 조각으로 발견됐지만 다행히 형태를 가늠할 수 있어 실제 사이즈를 추정한 복원도를 배치했다”며 “취락 규모에 비해 가마의 수는 적은 편이라 자급자족의 형태로만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의례공간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여겨지는 빙고와 분묘 공간에 대한 유물들도 볼 수 있다. 박 학예사는 “연접된 3곳의 분구묘에서 두 귀 달린 항아리가 똑같이 나왔다. 혹시 가족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며 “석택리에 백제 토광묘는 5기밖에 없다. 백제의 세력이 강해지며 이곳이 쇠락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예산 신리·목리나 홍성 신금성 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설명했다.

박보람 학예사는 전시에 대한 설명을 하며 제대로 된 발굴과 연구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발굴도 연구도 이뤄질 수 있다”고 당부했다.

공주대학교 정재윤 교수도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논고를 통해 “석택리 유적은 원삼국기 홍성지역 마한 세력의 실체를 밝혀줄 중요 유적이며, 환호 내 광장 3곳에서는 마한의 제천 행사가 행해졌을 수도 있다”며 “고대 홍성지역 마한 사회에 대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홍주성역사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을 준비한 박보람 학예사. 사진=노진호 기자
홍주성역사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을 준비한 박보람 학예사. 사진=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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