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묵 소장, 예산 지명 1100년 역사 밝혀낸 장본인
박성묵 소장, 예산 지명 1100년 역사 밝혀낸 장본인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9.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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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하면서 예산역사연구소 설립 끝내 사업 접고 향토사 연구 전념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 소장은 과거 건설업을 할 때만큼 돈을 못 벌지만 하고 향토사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보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 소장은 과거 건설업을 할 때만큼 돈을 못 벌지만 향토사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예산군에서는 올해 예산(禮山) 지명 탄생 1100년을 기념하고 있다. 예산 지명 1100년의 유래는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 

예산군을 대표하는 향토사학자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 소장을 만나 질문을 했더니 자신이 1100년의 역사를 찾아준 장본인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얻은 정답은, 1100년 전 고려 초로 거슬러 올라가 919년 이 지역이 ‘예산’으로 처음 명명이 됐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예산의 역사를 찾아준 계기가 된 것은 2013년 박 소장이 군 소식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라고 회고했다. 

“그해 군청 기획실 계장 한 분이 저한테 무슨 프로그램을 짜서 갖고 와 봐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퇴직하셨는데 그분이 준 보고서를 보니까 2014년도에 개청 100주년 기념행사를 할 계획이라고 돼 있었어요. 저는 내년이 예산 개청 100주년 되는 해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예산군에서는 1914년 일제강점기 전국의 지방행정이 통폐합된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 2014년을 개청 100주년으로 잡았다. 박 소장은 일제가 1914년 예산군과 덕산군, 대흥군 등 3개 군을 강제 통페합해 지금의 예산군으로 만들어놨지만 개청 원년으로 삼는데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1896년 광무개혁 때 현이었던 예산이 군으로 이미 승격한 상태였어요. 저는 일본이 강제 통폐합한 해를 기준 삼지 말고 앞으로 6년 후 예산의 지명이 나온 지 1100년이 되는데 그때 가서 기념행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연구소 입구에는 천도교 간판도 붙어 있다. 대학시절 동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천도교인이 된 그는 지금 예산교구장도 맡고 있다.
그의 연구소 입구에는 천도교 간판도 붙어 있다. 대학시절 동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천도교인이 된 그는 지금 예산교구장도 맡고 있다.

100년에서 갑자기 11배나 더 늘린 것인데 그가 자신있게 제안한 역사적 근거는 무엇일까?

“고려가 918년 개국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지역은 고산(孤山)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었는데 견훤 세력이 남아 후백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왕건은 이 지역이 비옥하기 때문에 벼농사가 잘 돼 경제적인 이득을 얻고 전라도로 진출하는 길목이기도 해 흡수하려고 했지요. 그 이듬해 919년 견훤에게서 등을 돌린 토호세력이 고려에게 항복했습니다. 동시에 왕건에게 예의를 잘 지키겠다는 뜻으로 고산이라는 지명을 예산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박 소장은 후백제를 지키려고 했던 토호세력이 견훤과 왕건 사이에 눈치를 보다가 힘이 더 센 쪽으로 붙으면서 굴욕적으로 얻은 이름이 예산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왕건이 예산이라는 이름을 새로 줬습니다. 예산이 이 지역을 지켜 내려고 자주와 자존 등을 위한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적인 눈치작전에 의해 왕건에게 충성하겠다는 의미여서 정체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 비운 속에 탄생한 지명이지만 1100년 동안 단 하루도 다른 이름으로 바꿔 쓴 적이 없다며 박 소장은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천안도 1100년이 됐지만 중간에 다른 지명으로 개명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예산은 한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며 예산 지명 1100년에 무게를 둔 기념행사를 권한 그의 충고는 군청 수뇌부에서도 적극 받아들여졌다. 결국 2014년 개청 100주년 기념행사는 자동적으로 취소되고 6년 후 2019년 1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것으로 미뤄졌다. 

지난 6월 자암 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축사를 하는 박성묵 소장
지난 7월 자암 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창립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박성묵 소장

드디어 2019년 예산 지명 탄생 1100주년을 맞이했다. 예산군은 올해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면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1일 '고려태조 예산행차'가 열릴 계획인데 이에 대해 박 소장은 강하게 비판했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애초부터 군이 주도적으로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관 주도로 하지 말고 민간에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100년의 예산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행사를 하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예산에 왕건이 왔다고 퍼포먼스를 한다고 하는데, 고려 태조가 여기 방문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도 없습니다.”

박 소장은 1100주년 기념행사를 지배체제의 군림을 표현하는 문화행사로 콘셉트를 잡은데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당당하게 이 지역을 지키려고 하다가 투쟁의 산물로 생긴 것도 아니고 무릎 꿇고 예산 지명을 받은 것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그런 것보다 지난 1100년 동안 예산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는 행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정치, 교육, 문화, 언론, 농업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를 조명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지난 1100년 동안 지역출신 역사인물들을 조명하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데 본받을 만한 인물이 누군지 살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보여주기식 이벤트, 이벤트로 시작해서 이벤트로 끝나니 1100년 역사에 대한 얼이 없어요.”

박 소장은 보수성이 강한 예산군에서 보기 드물게 가장 진보적인 인사로 꼽힌다.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예산지역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적도 있다. 그는 원래 특정 정당에 소속되거나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산이 워낙 보수적인 동네라 당시 메이저 야당에서 대선후보를 위한 지역유세 책임자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가까스로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인사들로부터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문재인 후보를 위해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에서 “빨갱이” 소리와 함께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두 번의 대선에서 예산군민들에게 문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 

예산읍내 주택가에 있는 이 빌딩 1층에 예산역사연구소가 있다. 토목사업으로 한창 돈을 벌 때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예산읍내 주택가에 있는 이 빌딩 1층에 예산역사연구소가 있다. 박 소장이 토목사업으로 한창 돈을 벌 때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예산군 고덕면 출신으로 예산농전에서 토목을 전공한 그는 한때 건설업을 하면서 향토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예산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도로와 하천 공사를 하러 다니면서 지역주민들을 자주 만나 옛날 이야기도 듣고 고문서도 수집하는 것이 본업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항상 수첩을 갖고 현장에 다니면서 적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옛 문서는 저한테 자상하게 보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빌려가 복사해서 돌려 드리곤 했지요.”

그렇게 구술로 받아 적거나 수집한 고문서와 각종 자료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예산군에서 가장 정통한 향토사학자로 만들어 주었다. 2008년 그는 예산역사연구소를 설립했다. 몇 년 후에는 건설업조차 미련 없이 접고 향토사 연구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사업을 왕성하게 할 때 번 돈으로 지은 3층짜리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와 강연활동으로 받는 강의료로 생계를 이으며 연구에만 전념한다. 비록 돈을 못 벌지만 뒤늦게 고향의 역사를 정립하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 얻는 보람과 기쁨이 너무 커서 금은보화를 줘도 바꿀 수 없는 그의 평생 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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