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자세
기자의 자세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3.10.1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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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때문에 언론사에서는 기자 개인의 생각이 기사에 표출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신입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기사에 기자의 생각이 드러난 것이 있는지의 여부가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언론사의 방향에 부합되느냐 아니냐를 가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자는 기자 자신의 생각이 드러난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 이 바닥의 정론이다. 그러면 왜 기자는 자신의 생각을 쓰면 안 되는가? 그것은 바로 공정성에 있다. 언론은 기자 개인의 주관이 아닌 객관을 통해 공정성을 담보하려 한다. 공정해야만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언론관이 언론 이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정성은 무엇인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공정성을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사전적인 의미의 공정성은 ‘공펑하고 올바른 성질’로 정의하고 있다.

기자는 왜 공정성을 고민하게 되는가? 그것은 바람직한 사회, 투명한 사회, 올바른 정의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공정성을 잃지 않으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다른 언론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기자는 한 단체가 주최한 세미나 기사를 쓰면서 토론자로 나온 패널의 주장을 인용해 기사를 쓴 일이 있었다. 패널의 주장은 농어민 면세유가 중단되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내용이었고, 기자는 가감 없이 그 주장을 기사로 써서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 언론사 데스크는 이 부분을 삭제하고 보도했다.

언론사에서 기자가 쓴 기사를 기자와 협의 없이 데스크 임의대로 문구와 문장을 삭제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2~3개월 후 농업인 면세유 중단 사안은 농어민에게 가장 중대한 현안이 됐다.

당시 이 언론사의 데스크는 면세유가 중단된다는 사실의 민감성을 감안해 주민들에게 혼란을 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패널 주장 인용 기사를 삭제했는지는 몰라도 언론사나 기자가 세상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전달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통제하려 든다면 그 언론은 이미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일정 부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기사를 쓸 때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의 말을 글자 수 세어 똑같이 실어 준다고 해서 공정하게 기사를 썼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성이란 법원에서 규정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하는” 일이다.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든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고, 기자가 사심 없이 여론을 전달하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는 삭제하고, 누가 한 말은 빼고, 어떤 부분은 빼고, 어떤 부분은 실어주고 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는 아니다. 언론의 공정성과 언론의 자유를 말할 때 반대되는 개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따라서 언론의 공정성을 강조하면 언론의 자유가 구속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 스스로가 당당히 쟁취할 수 있어야 하고, 언론의 공정성은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중시돼야 한다.

신문방송학을 포함한 미디어 사회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현실의 일부를 반영한다’고 말한 것처럼 하나의 기사 안에 현장에서 일어난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데스크의 판단에 따라, 언론사의 방향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공정성을 말하려면 ‘뻬거나 더하거나 하는 등의 무엇’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공정성은 현장에서의 배제나 삭제가 아니다. 언론의 한 사람으로 공정성의 문제에서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기 전에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해야 한다.

기자는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기사에 담으려는 노력을 경주함과 동시에 올바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갈고 닦아야 한다. 기자의 시각이, 기자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또 어느 방향을 바라보냐에 따라 기사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고 한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각기 다른 기자의 관점과 관점에 따른 해석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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