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5 – 어리숙하기 어렵도다!
[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5 – 어리숙하기 어렵도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10.3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병창 청운대학교 교수
난득호도(難得糊涂) 비첩. 여병창 교수 제공(출처= baike.baidu.com)
난득호도(難得糊涂) 비첩. 여병창 교수 제공(출처= baike.baidu.com)

최근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통해 이른바 잘난 사람, 출세한 사람들의 살아온 과정과 감출수록 드러나는 추한 민낯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과연 잘났다는 것은 무엇이고, 출세가 우리 삶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며, 세상을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사는 것일까? 차라리 어리숙해 보이고 손해 보는 듯해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는 것이 곧 행복이며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난득호도(難得糊涂·어리숙하기 어렵도다)’는 이와 관련해 깊이 생각해 볼 만한 경구(警句)이다. 이 경구는 청나라 때 산동성 유현 현령이었던 정판교라는 사람이 사촌 동생으로부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 문제로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힘 있는 형님이 승소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회신한 글에서 유래했다.

정판교는 이 편지에서 “천리 밖에서 편지를 보낸 이유가 담장 하나 때문이냐? 이웃에 조금 양보하면 또 어떠하랴? 만리장성은 아직 남아 있건만, 그때 그 진시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적고 “어리숙하기 어렵고, 손해 보는 것이 복이로다(難得糊涂, 吃虧是福)”라는 글을 썼다.

‘난득호도’ 밑에는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숙하기도 어렵도다. 총명에서 어리숙함의 경지로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렵도다. 한 가지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니, 애써 도모하지 않으면 나중에 복이 찾아올 것이로다(聰明難, 糊涂難, 由聰明轉入糊涂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来福報也)”라고 주해(註解)를 달았으며, ‘흘휴시복’ 밑에는 “가득 차면 줄어들게 돼 있고, 비어 있으면 점점 차게 돼 있도다. 자기가 손해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게 되느니 각자 마음의 반씩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해지면 이 어찌 복이 아니겠느냐(满者損之機, 虧者盈之漸, 損於己則盈於彼, 各得心情己半, 而得心安既平, 且安福即在是矣)”라고 주해를 달았다.

청나라 시대에 양주팔괴(揚州八怪)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18세기 중엽을 살았던 8명의 괴짜 문인 화가를 일컫는 말이다. 강남의 번화한 도시 양주를 무대로 활약했던 이들은 파격적인 화풍 못지않게 삶의 방식 또한 자유분방해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 중에서도 그룹의 좌장 격이자 유일한 과거급제자였던 정판교(鄭板橋)는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한 삼절(三絶)로도 이름이 높았지만, ‘돈을 말하지도 만지지도 않는다’는 사대부의 불문율을 깬 예술사적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화 작품의 가격을 스스로 매긴 ‘판교윤격(板橋潤格·정판교가 그린 그림값)’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폭(大幅) 6냥, 중폭 4냥, 소폭 2냥, 족자나 대련(對聯)은 1냥…. 예물이나 음식보다 현금을 환영함. 현금을 받으면 내 마음이 기뻐져 작품이 절로 잘되기 때문임(送現銀則心中喜樂,書畵皆佳).”

평생 불우한 가운데 남에게 서화를 그려준 대가로 살았던 그는 빈민과 승려, 창기와 더불어 격의 없는 삶을 나눈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이 오십이 넘어 지낸 지방 현령 11년 동안에는 빈민을 보듬는 선정을 편 까닭에 악덕 관리와 지방 부호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것을 못 견뎌 사직한 그를 백성들이 모두 나와 통곡하며 전송했는데, 그의 행장은 자신과 길 안내인, 짐을 태운 당나귀 세 마리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집집마다 그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난득호도’와 관련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현령 시절 정판교가 자칭 ‘호도노인(糊塗老人·어리석은 노인)’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다. 이름과는 달리 노인에게 풍기는 대인의 풍모에 압도당한 그는 기념으로 ‘이처럼 바보스러운 척하기도 어려워라(難得糊塗)’라는 글을 써주고 ‘강희에 수재, 옹정에 거인, 건륭에 진사를 지낸 정판교(康熙秀才, 雍正擧人, 乾隆進士)’라고 낙관했다. 이에 노인이 답글로 ‘미석(美石)은 얻기 어렵고, 잡석은 더 얻기 어려워라. 운운’이라고 쓴 다음 ‘초시 일등, 향시 이등, 전시 삼등한 아무개(院試第一, 鄕試第二, 殿試第三)’라고 낙관했다. 노인 앞에서 거들먹거리다가 보기 좋게 한 방 먹고 돌아온 정판교가 곧바로 ‘난득호도’와 ‘흘휴시복’이라는 글귀와 함께 주해를 써서 작품으로 남겼다.

정판교의 이 두 메시지는 유독 처세술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동안 내용이 덧붙여지면서 마침내 ‘난득호도경(일명 바보경)’이라는 경전의 반열에 올랐다. 또 오늘날에 이르러 노자의 ‘큰 재주일수록 어수룩하게 보인다(大巧若拙)’, 또는 ‘크게 지혜로울수록 어리석게 보인다(大智若愚)’나 채근담의 ‘세상을 살면서 조금 양보하는 것이 나를 높이는 길이다(處世, 讓一步爲高)’라는 구절보다 훨씬 사랑받는 경구가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