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너무 소외된… 느린 학습자
[칼럼] 너무 소외된… 느린 학습자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11.1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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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진 혜전대학교 언어치료과 교수

지난달 23일 ‘경계선 지능인(느린 학습자) 자립지원 방안 모색’을 주제로 의정토론회가 충남도의회에서 개최됐다. 포털사이트에 ‘느린 학습자’를 입력하면 많은 뉴스와 관련 정보가 검색된다. 몇 년 사이 관심이 많이 늘어난 결과이다. ‘느린 학습자(지능지수 71~84의 경계선 지능인)’는 지적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인해 소속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 지적장애로 진단돼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보다는 전반적인 지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느리지만 천천히 배워간다는 의미를 담아 ‘느린 학습자’라고 통칭하고 있다.

아직은 느린 학습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 정규분포도에 따라 전체 인구의 약 13.6%를 차지한다. 지난 5월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를 고려했을 때 약 699만명으로 추정된다. 지적장애 집단(2.3%)보다 6배가량 큰 규모이며 주변에 있는 사람 10명 중 두세 명이 느린 학습자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제도적인 지원책이 미비해 여러 지원이 있는 지적장애인 그룹에 들지도, 평균 집단에도 끼지 못한 채 복지·교육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법상 장애 등록을 할 수 없고, 특수교육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느린 학습자 지원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됐고, 전국 12개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됐지만, 이 역시 온전히 느린 학습자만을 위한 법안은 아니다. 학습부진아 등의 교육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학령기가 아닌 청년 느린 학습자들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과 많은 학업량은 느린 학습자들을 매우 버겁게 한다. 또한 모둠 수업에서 정해진 역할 수행의 힘듦으로 또래에서 외면받거나 소외되고 있다. 경계선 지적지능 아동·청소년들은 언어적 표현력이 어설프고 상황 이해력이 낮다 보니 교실에서 또래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유행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이 때문에 또래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배제, 무시, 따돌림, 간식 셔틀, 가스라이팅, 학교폭력, 성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게임 규칙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신체적으로도 소근육이나 대근육 발달이 또래와 차이가 있어 놀이 상황에서 또래로부터 외면받는 경우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또래 관계의 제한된 경험과 학습성취 경험을 유년기부터 박탈당한 상태의 느린 학습자들은 낮아진 자기 효능감으로 인해 우울감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느린 학급자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언어치료를 비롯한 각종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각종 치료는 단기간 이뤄지지 않고 생애주기별 관점으로 장기적‧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계선 지능 아동·청소년들의 학령기뿐만 아니라 진로 및 취업과 사회생활에 대한 교육이 전 생애적으로 필요하다.

언어치료를 예로 들면,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필수 어휘, 의사소통 기술, 이야기하는 방법 등을 익혀야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습을 위해 한글 해독 및 교과서 필수 어휘를 익혀야 한다. 특히 난독증과 난서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고교에서는 사회적 상황에 맞는 표현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 특히 또래 관계에 필요한 어휘들도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카톡에서 대화하는 방법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하는 방법 등이 있다. 청년들에게도 취업을 위해 상황에 맞는 대화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특정 과목이나 교육으로 한정 짓기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개입이 필요하고, 이들이 겪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 언제든지 지원할 수 있는 개별적 지원 체계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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