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익채, 구암 복한의 효정신 잇고 향토사 연구
복익채, 구암 복한의 효정신 잇고 향토사 연구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0.17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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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범한 내포지방 고대문화연구원 회장 맡아 활발한 활동
복익채 어르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홍성군 금마면 신곡리 구암 복한의 정려비가 있는 곳으로 구암공원과 그의 자택은 바로 붙어 있다. 자택 이름을 구암정사로 지어서 붙인 현판이 보인다.
복익채 어르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홍성군 금마면 신곡리 구암 복한의 정려비가 있는 곳으로 구암공원과 그의 자택은 바로 붙어 있다. 자택 이름을 구암정사로 지어서 붙인 현판이 그의 뒤에 보인다.

복익채 어르신은 1993년 홍성군청에서 정년은퇴 후 향토사에 푹 빠져 지금 정년은퇴가 없는 연구활동으로 바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기자는 15일 오후 금마면 신곡리 뒷동산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을 방문했다. 신곡리 넓은 들판에는 콤바인이 무르익은 벼를 수확하는 광경이 펼쳐졌고, 그의 집 ‘구암정사’(久菴精舍) 마당에는 굵은 감이 탐스럽게 매달려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정겨웠다.

‘구암’(久菴)은 조선 태종 때 효자로 유명한 복한(卜閒) 선생의 호로 복익채 어르신의 집 바로 뒤에 정려비가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99호로 지정된 성효각(誠孝閣)으로, 복씨 가문을 대신해 복익채 어르신이 관리한다. 성효각 주변이 구암공원으로 조성돼 있으며, 붙어 있는 그의 집도 구암정사로 이름 지어 가문의 영예와 함께 자부심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복익채 회장이 차고에서 옛날 홍주부로 된 관찰사 현판을 보여주고 있다.
복익채 회장이 차고에서 옛날 홍주부로 된 관찰사 현판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81세, 얼굴에 그 세월만큼 늘어난 주름살에 훤칠했던 키도 다소 휘어지고 쪼그라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현관에서 투명한 유리문 너머 거실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터넷과 컴퓨터도 젊은이 못지않게 잘 다룰 줄 아는 그는 관심있는 키워드를 입력해 필요한 정보를 잘도 찾아낸다. 백제와 홍주(홍성)와 관련한 고대사는 물론이고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조국 사태까지 일간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다 탐색해보고 필요한 자료는 프린트를 해 주제별로 묶어서 열람하기 좋게 소책자로 편집하기도 한다.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자료로 요긴하게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예산과 홍성을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 백제사 연구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박성흥 선생에게 매료돼 향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부터 홍주향토문화연구회에 들어가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는 2004년에 ‘홍주천주교사’를 집필하고 한 권의 책으로 낸 것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홍주지역에 들어온 천주교의 역사와 신자들의 수난사를 일목요연하게 밝혀내 당시 가톨릭 대전교구에서 놀라며 크게 칭송했다고 한다. 

또 하나 보람 있는 일로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의 사당이 원래 없었는데 당진시 면천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 사당을 짓도록 한 일과 서부면에 김자의 묘비를 찾아 그가 조선시대 결성현감을 지내면서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크게 무찌른 공을 밝혀낸 일을 들었다. 그 후 김자 결성현감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결성향교 주관으로 경주김씨 수은공파 대종회와 함께 매년 승전제를 드리고 있다. 

올해 7월 30일 박성흥 선생의 아들 박태신 씨가 아버지의 연구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내포지방고대문화연구원을 창립하면서 그도 합류했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얻은 그는 박태신 원장과 최태호 이사장과 같이 내포지방고대문화연구원을 이끌고 나갈 무거운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사단법인체로 출범한 내포지방고대문화연구원은 이번에 첫 사업으로 17일 오후 2시 충남역사문화연구소와 함께 충남도의회 세미나 112호실에서 ‘주류성과 백촌강’에 대해 학술세미나를 한다. 여기에 토론자로 참여하는 복익채 회장은 행사를 이틀 앞두고 열심히 주제 발표자들의 원고를 읽고 있었다. 시력이 좋아 작은 글씨도 안경 없이 잘 보신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A4용지의 프린터 물도 절반 크기의 사이즈로 축소해 스크랩북을 만든다. 그렇게 해야 복사점에서 한 권으로 편철하는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작고 무게도 가벼워 보관하기가 좋다. 

충남도청에 충남도립대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 가서 삼국사기를 공부를 하는 것도 요즘 큰 즐거움이다. 

“65세 이상은 수강료가 무료라 60대 은퇴자들과 칠팔십대 노인들이 많이 옵니다. 나는 3년째 다니고 있어요.”

한문학자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원문을 해석하며 가르친다며 한문으로 된 고문서 독해를 위해 아주 도움이 되는 공부라고 했다. 

복한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보존되고 있는 성효각 앞에서 복익채 내포지방 역사문화연구원 회장.
복한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보존되고 있는 성효각 앞에서 복익채 내포지방 고대문화연구원 회장.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복 회장이 차고에서 나무 현판을 몇 개 보여줬다. 옛 지명으로 된 관청 이름을 쓴 현판이었다. 운주도단련사, 홍주부관찰사, 홍주우체사 등 오래전 옛날 홍성군의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집 뒤 성효각에는 조선 초기 유명한 효자 복한(1350-1427)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돼 있었다. 19세 나이에 복한은 부모에 대한 효가 지극하였다. 부모님 병 구완과 관련된 모쟁이(숭어새끼)샘 효자샘(孝子泉) 이야기와 함께 여막(廬幕) 생활로 부모님 3년 상을 치른 지극한 효성에 땅과 하늘이 감동했다고 한다.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19세손이며 고려말 충신 복위룡의 아들로 1350년 홍주 여수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경학연구에 뛰어났고, 세종조에 호조 좌랑에서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다. 1427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나니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1458년(세조 4년)에 이 비가 세워졌다.

이렇게 훌륭한 조상을 둔 복씨 가문과 그 정신을 숭모하며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호하는 후손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동산을 내려왔다. 짧아진 가을해가 어느덧 서산 위로 바짝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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