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卒業式) 아닌 창업식(創業式)
졸업식(卒業式) 아닌 창업식(創業式)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24.01.3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풀무학교, 학생별 3년 활동 돌아보며 격려
졸업생 한 사람씩 3년간 활동사진을 띄워놓고 교장이 설명하는 풀무학교 창업식. 사진=이번영 시민기자
졸업생 한 사람씩 3년간 활동사진을 띄워놓고 교장이 설명하는 풀무학교 창업식. 사진=이번영 시민기자

홍성군 홍동면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교장 박현미)가 해마다 특별한 형식과 내용의 졸업식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학교는 일반 학교의 ‘졸업식’을 ‘창업식’으로 부른다. 3년의 공부로 끝나는 의미의 졸업(卒業)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창업(創業)이라는 것이다. 졸업식 노래 역시 ‘출발의 노래’로 부른다.

풀무학교는 지난 27일 전교생과 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59회 창업식’을 했다. 학사보고는 25명 창업생 이름과 진로 상황을 기록했는데 진학하는 대학교 이름은 생략한 채 사회복지학과 진학, 식품영양학과 진학, 순환농학류(일본유학) 진학 등 전공과목만 기록했다. 유명 대학 진학을 자랑스럽게 표시한 다른 학교들과 달랐다.

풀무학교는 예부터 창업논문(졸업논문)을 쓰기 때문에 개인별 논문 제목을 표시했다. 고등학교 학생 논문인가 의아할 정도의 수준 높은 제목들이 현란하게 소개됐다. ‘암호화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자본주의를 중심으로’(고은가람), ‘동성애의 사회적 수용을 위한 고찰-한국 개신교를 중심으로’(손하진). ‘평촌목장의 방향성에 대한 고찰-발전 과정과 세부정보를 중심으로’(평촌요구르트를 생산하는 평촌목장집 아들 신노아). ‘로마 가톨릭의 과오-중세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조정욱) 등이다.

여느 학교 졸업식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상장 수여는 없었다. 순서지 아래에 다음과 같이 안내했다. “축하 격려를 위한 표창장을 추천하신 분들과 기관이 많았지만, 개교 이래 학교의 정신을 반영하고자 고사하기로 했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한 사람, 못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교육방식 때문에 외부 표창들을 사양했다는 것이다.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 순서는 25명 창업생이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자라왔는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스크린에 한 학생씩 그동안 활동한 사진을 띄워놓고 지내온 과정, 특징, 장점, 그의 꿈과 진로 등을 박현미 교장이 설명했다. 전교 학생이 기숙사에서 한 가족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모두 알고 공감하는 내용들이어서 박수와 웃음과 눈물과 뭉클함으로 감동하는 시간이었다.

끝부분은 학부모 합창으로 마무리했다. 학부모 40여명이 무대에 올라 “어제저녁 학생과 학부모 간담회를 마치고 열심히 연습했다”고 소개하며 ‘축하해요’ 노래 두 곡을 불렀다.

서일원 홍동면장, 이종화 도의원, 인근 학교 교장 등 내빈들은 인사말 한마디 안 시켰으나 2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경청했다. 신순화 학부모회 부회장은 축사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졸업식은 평생 처음 본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