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도 당당하게 아이 양육할 수 있게 해야”
“미혼모도 당당하게 아이 양육할 수 있게 해야”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0.2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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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란 충남도의원, 온힘 다해 직접 겪은 사회적 편견 깬다
황영란 도의원은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한때 자신의 처지였던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뛰며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황영란 도의원은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한때 자신의 처지였던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뛰며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척수장애인으로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도의원이 있다. 황영란(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은 휠체어를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데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네 번째 도전 끝에 당선돼 도의회에 입성했다. 그 후 자신이 장애인으로서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해왔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불철주야 정책 개발에 온힘을 쏟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충남도의회 청사 2층에 있는 그의 방을 찾았다. 문화복지위원회 소속으로 그의 방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직도 휠체어 이동이 어려운 사회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척수장애인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
“우리 사회 환경이 아직도 휠체어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이동하는데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어렵다. 의회 사무처에서는 장애인 의원이 의정활동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활동지원을 해주고 있다. 나도 의정활동을 위해 이동할 때 활동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다.” 

-올해 초 유럽으로 해외연수를 갔을 때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이나 편의시설을 보고 부러웠던 점은. 
“베네치아는 해상교통이 장애인들을 위해 잘 돼 있었다. 그곳은 배가 대중교통이다. 배에 휠체어 장애인이 아주 타기가 용이하게 정거장이 육지처럼 돼 있었다. 배의 탈 수 있는 출입구와 정거장 높이가 같았다. 바다가 출렁출렁거려도 탑승을 쉽게 할수록 돼 있었다. 물론 배 안에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공간도 확보돼 있다. 우리나라는 육지 안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이동하기도 어려운데 해상교통은 더 어려울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세계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라고 한다. 거기는 도로가 구분돼 있지 않았다. 자동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었고 신호등도 없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차량은 반드시 멈췄다. 도로에 턱이 없어 휠체어가 이동하는데 용이하게 돼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은 이용 안 해봤나? 
“대중교통은 해상에서만 이용했을 뿐 일반 버스나 트램은 타보지 못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관광버스로만 이동했다. 그러나 관광버스도 장애인용 리프트가 안 돼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으로서 이동이 어려웠다. 우리가 예산 문제 때문에 그런 버스를 빌렸다. 안 그래도 당시 예천군의회에서 의원 해외연수 중 불미스런 일을 일으켜 비판여론이 들끓을 때라 우리는 자부담을 많이 했다. 지방의원 해외연수에 대해 세간의 관심과 이목을 많이 받고 있는 가운데 충남도의회에서도 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취지에 맞게 잘 갔다 오려고 경비를 많이 줄이고 자부담을 늘리면서 비용 부담이 큰 장애인용 버스를 빌리지 못했다. 그래서 해외연수 기간 동안 척수장애인으로 참여한 저와 또 한 분의 의원, 두 사람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주변 분들이 우리를 업어서 차에 태우고 내려주느라 이동할 때마다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 문화분야에 치중한 의정연수라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20대에 중도장애인으로 바뀐 삶

-당신은 선천적 장애인인가, 후천적 장애인인가?
“나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우리나라 장애인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나는 25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남은 인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비장애인으로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장애인이 되면 대부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절망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25살은 사춘기의 연장이다. 혼란한 삶을 살면서 의외로 낭만적인 편이었는데 염세적인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원래 교회를 다녔던 나는 당시 냉담한 가운데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다시 부르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통제하기 위해 이 방법 밖에 없었구나! 하나님이 나의 허리를 꺾으시면서 나를 사셨다.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허리는 나의 자존심이고 존재감이다. 하나님이 나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다 꺾으시고 사셨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 후 장애인의 모습으로 바깥에 당장 나가지는 못했다. 세상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가 1987년도였다. 대학을 휴학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사고를 당하고 갑자기 내 인생은 추락했다. 절망의 끝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끝난 인생으로 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

-언제부터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활동가로 나섰나?
“1995년 무렵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장애인 관련기관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2007년 충남중증장애인자립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어지게 되었다. 그 후 민선5기 충남도지사 인수위원회 정책특별보좌관, 사회복지위원, 장애인복지위원으로 일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됐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계기는.
“2006년도에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동시에 나는 당시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군의원후보로 나갔다. 당시 하나밖에 없었던 군의원 비례대표로, 그것도 진보정당 후보 기호 2번은 당선권과 거리가 멀었다. 2010년,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도의원 비례대표로 도전했다가 낙선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 때문에 미혼모들이 몹시 힘들어 하고 있다. 미혼모 출신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기준으로 성에 관해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아이를 안 낳았다고 다들 순결한가? 그렇지 않다. 아직도 이런 사회적 편견 때문에 미혼모들이 밖으로 못 나오고 있다. 미혼모들도 당당해야 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아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출산했다. 그러나 미혼모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편견을 깨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혼인관계만 중시한다. 혼인관계만 온전하다고 생각한다. 미혼모는 저출산과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가가 법률혼 가정에만 아이를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이미 낳은 아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와 도의회에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 나는 당사자이기도 했었기 때문에 미혼모 문제에 대해 나만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동료상담은 동료가 해야 한다. 미혼모가 미혼모를 상담할 수 있게 조례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남자, 미혼부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아이를 혼자 키울 때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이 많아 2배 이상 지원해주고 주변에서 따뜻한 마음도 베풀어야 한다.”

기자는 황 의원이 중도 장애인으로서 절망적인 상황을 신앙으로 극복한 것도 대단하지만 미혼모로서 사회적 편견과 싸우며 당당하게 자존감을 갖고 살아온 것이 대견하고 놀라웠다. 임기 4년 중 벌써 1년 4개월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세 번의 5분 발언을 통해 중증 장애인, 미혼모, 지역아동센터 문제를 언급했다. 도정 질문은 한번 했다. 

비례대표는 주어진 4년간 의정활동을 충실히 하고 현장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당의 부름이 있다면 지역구로 출마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과거 도 정책보좌관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에 자신은 의정활동보다 행정적인 일이 더 적합하다고 웃었다. 한때 사회적 약자요 기초수급자로서 살아봤던 경험과 장애인 활동가, 의정활동의 경력이 나중에 더 큰 일을 하는데 필요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방 유리창 너머로 만산홍엽으로 물든 산과 들이 액자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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