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 교수, ‘2019전문대학인상’ 수상
이용환 교수, ‘2019전문대학인상’ 수상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1.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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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혜전대 사회복지과 중도탈락률 0% 
이용환 교수는 3년만에 산림청 선정 100대한국명산을 정상까지 다 정복했을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100대 명산 정복을 성취한 후 제자들에게 약속한 피자파티를 했다고 한다.
이용환 교수는 3년만에 산림청 선정 100대 한국명산을 정상까지 다 정복했을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100대 명산 정복을 성취한 후 제자들에게 약속한 피자파티를 했다고 한다.

이용환 혜전대학교 교수가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로부터 ‘2019전문대학인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혜전대에서 약 17년간 사회복지과 교수로 근무하는 동안 650여명의 사회복지사와 어린이집 교사를 양성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재학생들에게 약 1100만원의 장학금을 자비로 지원했다. 또 2003년부터 매년 대학 자체 예산을 지원받아 문화적 접근성이 어려운 농어촌 어린이 1만5000여 명에게 어린이 뮤지컬 무료관람 및 뮤지컬 CD 3000여 장을 보급해 보육시설 발전 및 아동 정서발달에 기여한 유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전문대학인상 수상자가 된 그는 100만원 상금도 전액 기부를 했다. 자신이 재직하는 대학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20명의 용역 노동자들을 위해 피복비로 써달라고 학교 측에 쾌척했다. 

그는 평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회복지인으로서 현재 홍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측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기자는 혜전대학교를 찾아 그를 만나보았다. 

“저는 아버지가 교육자여서 전근을 자주 다니셨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곳은 홍성군 서부면 서부초교 사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홍성군 갈산면과 천안시에도 이사를 갔다가 다시 홍성으로 돌아와 용봉초, 홍성중을 거쳐 1979년 홍성고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무역회사에 1년간 다니다가 1987년 10월 건강보험공단 설립멤버로 입사했다. 

그때 5년 2개월간 근무하며 단국대에서 석사학위 공부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충남도청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홍성군에서 10년 2개월간 근무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근무한 경력까지 사회복지 현장에서 15년간 근무했죠.” 

학구파였던 그는 홍성군청에 다니면서도 야간에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야간대학에 시간강사로 뛰기도 했다. 

“2000년도부터 목원대와 원광대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낮엔 근무해야 하니 밤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일주일에 1~2회 박사학위 공부하러 가고, 거기 안가는 날은 시간강사로 나갔죠.”

그는 홍성군 공무원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한 일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어느 해 1월 1일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사회복지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시고 싶다는 거였죠.”

김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함께 투쟁하는 재야인사들을 부를 때 익숙했던 호칭으로 ‘이 동지’라고 부르면서 그를 격려해줬다. 

“그때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는 말대신 영세민으로 부르면서 1종, 2종으로 나눴어요. 가택보호대상자에게는 쌀 10kg, 보리쌀 2.5kg씩 한 달 식량으로 지급했는데 정부미라 품질이 안 좋았어요. 그것도 갖다 주지도 않았어요.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읍·면사무소로 직접 받으러 와야만 했죠. 그래서 저는 집집마다 날라다 드렸습니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이 들으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는 하지 않아도 될 정부미 배달을 하는 공무원이 있다는 말은 대통령조차 감동시켰다. 이용환 주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현장에서 평소 느꼈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사실 정부미는 여러 해 묵은쌀이어서 밥을 해도 맛이 없어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현금으로 주면 다른 음식을 사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는 대통령에게 쌀 대신 현금으로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는데 늘 밥만 먹을 수 없잖아요. 어떤 할아버지는 쌀을 받고 바로 시장에 가서 팔기도 했어요. 그러면 몇 천원밖에 못 받았어요. 또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3만원씩 일률적으로 주는 노령수당도 8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더 줘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이 동지’의 말을 경청한 김영삼 대통령은 그 다음해에 바로 복지정책에 반영했다. 문민정부는 영세민에 대한 정부미 지급방식도 바꿨고, 8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지급하는 노령수당도 5만원으로 인상시켜 시행을 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3년 공직을 떠나 혜전대학교로 가 사회복지과 교수가 됐다. 막상 교단에 서보니 의욕만으로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혜전대가 수학능력이 아주 우수한 아이들이 오는 곳이 아니잖아요.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수업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요즘 수요자 중심 교육이니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실제 대학에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교육이 너무 많았어요. 학생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현장견학을 많이 다녔고 실습도 많이 했습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아니면 가슴높이라도 맞춰야 하죠. 아니면 무릎높이에 맞춰주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는 첫해부터 특별한 방식의 교수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뮤지컬이었다. 

“2003년 혜전대에 와서 학생들에게 졸업 작품으로 연극과 뮤지컬 같은 것을 시켰습니다. ‘교재교구’라는 과목이 있어서 아이들이 다 만들도록 했죠. 대형무대를 만들고, 부직포로 옷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지원 없이 했으나 나중에는 지원을 받아 올해까지 17회를 했습니다.”

홍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요 임원들이 지난해 11월 광천읍에서 가두 캠페인을 벌이러 나가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홍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요 임원들이 지난해 11월 광천읍에서 가두 캠페인을 벌이러 나가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맨가운데 김석환 군수(노란 피켓 앞에 선 이)의 왼쪽에 나란히 서서 파이팅을 외치는 이용환 홍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공동위원장. 김 군수는 관을 대표하는 공동위원장이다.  

매년 그가 기획과 연출부터 극본도 만들고 총감독을 맡아 지휘를 했다. 학생들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대강당의 무대에 설치할 3개의 큰 막을 비롯해 40여벌 되는 의상과 율동복을 미싱을 사용해 만들어야 했고, 배우로서 연극연습도 해야만 했다. 공연 일정을 잡아 홍성군내 어린이집과 아동시설에 초청장을 보내면 당일 엄청난 인파가 몰려왔다. 물론 무료공연이었다. 

“공연 당일 오전 10시에 접수를 받으면 3분 안에 좌석이 다 차 버려요. 지방에서 뮤지컬 보기가 힘드니까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오전 10시, 오후 2시, 2회 공연을 했습니다.” 

혜전대 사회복지과의 뮤지컬이 소문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당진, 보령, 논산까지 각 지역 어린이집연합회에서 보내주는 트럭에 소품을 싣고 가서 무료공연을 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잘 했으나 지금은 힘들어 해 내부 공연만 합니다. 혜전대 대강당에서 오전·오후 2회 공연을 하면 하루 700~900명이 보니까 17년째 관람객 누적수 1만5000명 정도 됩니다. 공연실황을 CD에 담아 배부하기도 했어요. 초창기에는 비디오 테이프에 복사해 보내줬고, 요즘은 CD대신 파일로 만들어 보내줍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촌 어린이들한테 뮤지컬을 보여줌으로써 정서발달에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그것을 준비하느라 2개월 동안 엄청나게 고생합니다. 밤늦게까지 연극배우처럼 연습을 시키는데 아이들한테는 힘들지만 그것을 하고 나면 단합이 잘 돼요. 사회복지과에 대해 자긍심도 갖게 되고 끝나고 나면 성취감을 느끼며 무대에서 우는 아이도 있어요.”
 
뮤지컬을 하면서 또 하나 거둔 효과가 있다. 혜전대 사회복지과 중도탈락률이 최근 4년간 1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제 60이 넘은 나이지만 이 교수는 언제나 청춘의 마음으로 청춘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전문대학을 살리고 사회복지과를 혜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과로 만들었다.

원래 재주가 많았던 그는 초교시절부터 학예발표회를 하면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고 대학시절에는 기타를 치면서 그룹사운드 활동도 활발히 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전문대학인상 외에도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충남도지사. 홍성군수, 충남도립대학장 등으로부터 다수의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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