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뚝’… 위대한 분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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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0.05.19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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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지역 역사인물 동상·흉상 찾아보니…
김좌진·한용운·최영·성삼문·한성준 등 설치
생가지·기념관 등 인근 볼거리도 다채
홍성군에서 받은 ‘역사인물 동상·흉상 현황자료’에 따르면 홍성에는 김좌진과 한용운, 최영, 성삼문, 한성준 등의 동상·흉상이 있었다. 사진= 노진호/ 그래픽= 조지은
홍성군에서 받은 ‘역사인물 동상·흉상 현황자료’에 따르면 홍성에는 김좌진과 한용운, 최영, 성삼문, 한성준 등의 동상·흉상이 있었다. 사진= 노진호/ 그래픽= 조지은

‘홍성’은 우리 역사 변혁의 중심에 있었고, 그곳의 자연은 사람의 쉼터이자 문화·예술의 요람이 됐다. 민족의 노래한 시인, 광복을 쟁취한 독립운동가 등이 홍성의 품 안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역사·문화의 도시 홍성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홍주성과 궁리포구 등 ‘홍성8경’을 둘러볼 수도 있고, 홍주의사총과 고산사 대웅전 등 역사유적을 찾을 수도 있다. 또 홍주성 천년여행길과 내포천주교순례길 등 ‘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고, 오서산과 백월산 등 ‘산’을 올라 볼 수도 있다. 물론 한우와 대하·새조개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농·어·산촌 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내포뉴스는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어쩌면 눈여겨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홍성지역 역사인물의 동상(흉상)이다.

주로 구리로 만들며,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든 기념물을 뜻하는 동상(銅像)과 흉상(胸像)은 그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대접이 천차만별이다.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값진 대우를 받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외친 국민들에게 만행(蠻行)을 저지른 전두환처럼 흉물이 되기도 한다.

홍성군 문화관광과에서 받은 ‘역사인물 동상·흉상 현황자료’에 따르면 홍성지역에는 김좌진과 한용운, 최영, 성삼문, 한성준 등의 동상·흉상이 있었다. 민간에서 세운 것 등 일부는 누락됐을 수 있다.

홍성을 처음 찾은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종합터미널 인근에 우뚝 서 있는 ‘김좌진 장군상(장군상5거리)’일 것이다. 이 동상은 1983년 5월 31일 설치됐으며, 전체 높이는 11.8m로 장군이 독립군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주벌 호랑이’ 백야 김좌진 장군은 1889년 충청도 홍주목 고남면 행촌리(현재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민족계몽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으며, 1910년대 무장톡립투쟁에 전념해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다.

홍성군 갈사면 백야기념관 내에 있는 김좌진 장군 흉상. 사진= 노진호 기자
홍성군 갈사면 백야기념관 내에 있는 김좌진 장군 흉상. 사진= 노진호 기자

특히 김좌진 장군은 1920년 청산리 대첩으로 독립운동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30년 1월 24일 고려공산당 청년회원 박상실에 의해 순국했으며, 1934년 홍성군 갈산면 이호리에 밀장된 후 1958년 보령으로 이장됐다. 또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김좌진 장군은 생가지 내 백야기념관에 흉상(2018년 설치)이 있으며, 생가지 뒤편 백야공원에 유년시절부터 독립군 활동까지 묘사한 동상 5개(2007년 설치)가 세워져 있다. 백야기념관은 장군의 탄생부터 만주 망명까지 과정을 담은 제1전시실과 청산리 전투를 소개하는 제2전시실로 구성됐다.

홍성군 결성면에 가면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날 수 있다. 한용운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운 그는 9세에 문리를 통달해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했다. 한용운 선생은 26세에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했고, 32세 때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했다.

3·1운동을 주도한 한용운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했으며,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했다. 이후 독립운동단체 신간회를 이끌기도 한 그는 민족독립·불교유신·자유문학의 3대 사상가로서의 절의(節義)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1962년에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됐다.

한용운 선생의 생가지 앞에는 2011년 명동골목 하나빌딩 앞에서 이전된 전신상이 있으며, 만해문학체험관 입구에는 흉상도 설치(2007년)돼 있다. 선생의 동상은 홍성 출신 보훈유공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충령사(忠靈祠) 인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985년 설치된 것이다.

충령사(홍성읍 남장리)에서 2.6㎞ 떨어진 홍주문화회관 앞에는 ‘조선의 명고수(名鼓手)’ 한성준 선생의 춤비(1998년 설치)가 있다. 1875년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 성악 연구회 창립자의 한 사람으로 명창과 고수를 많이 길러냈다. 한성준 선생은 만년에 민속무에 전념해 그 체계를 세웠으며, ‘학춤’으로 유명하다.

‘성준’은 예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호적에는 ‘문필(文必)’, 묘비에는 ‘성진(成鎭)’, 홍성군지에는 ‘춘석(春錫)’으로 각각 기재돼 있다.

한성준 선생은 무용계에서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로 통하기도 한다. 그는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춤을 춰 참봉 벼슬을 제수받기도 했으며, 그의 승무와 태평무는 각각 중요무형문화재 제27·92호로 지정됐다.

이와 함께 홍성군청 인근에는 5개의 흉상이 있다. 우선 홍주읍성 서쪽 성벽에는 최영·성삼문·한용운·김좌진 흉상(이상 1993년 설치)이 있다. 또 2011년에는 명동상가의 한 가게 앞에 한용운 선생의 흉상이 세워졌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로 유명한 최영 장군은 고려 말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고려왕실을 지키려 한 명장군이자 재상이다. 장군이 태어난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는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사당이 건립돼 있다.

충청도 홍주 노은동(현재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난 성삼문은 목숨을 바쳐 신하의 의리를 지킨 ‘사육신(死六臣)’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집현전 시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1443년) 정인지, 신숙주 등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성삼문은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돼 능지처참을 당했다. 그는 사후에 충문(忠文)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200여년 후인 숙종 때 역모 혐의가 풀렸다.

날씨도 점점 더워지고, 언제 초미세먼지 공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동상만’ 찾아보고 다니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홍성지역의 동상과 흉상이 있는 곳에는 역사와 문화, 예술이 깃들어 있으며 이야기가 함께 한다.

이번 주말, 위대한 인물들의 안내를 받으며 홍성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홍성군 결성면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 앞 동상. 이곳은 1989년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75로 지정됐다. 사진= 노진호 기자
홍성군 결성면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 앞 동상. 이곳은 1989년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됐다. 사진=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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