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홍성읍내 가는 정동규 어르신 
매일 아침 홍성읍내 가는 정동규 어르신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8.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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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홀몸 되자 고독 이겨내기 위해 사람 만나러 외출
정동규 어르신은 약 20년 전에 예산 중앙초교, 응봉초교 교장을 지내고 은퇴 후 호주와 서울에서 살다가 작년에 고향 홍북읍으로 내려왔다.
정동규 어르신은 약 20년 전에 예산 중앙초교, 응봉초교 교장을 지내고 은퇴 후 호주와 서울에서 살다가 작년에 고향 홍북읍으로 내려왔다.

내포신도시에 사는 90대 노신사 정동규 노인은 매일 아침 8시면 집을 나선다. 내포환승센터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는 홍주여객이 정 노인이 사는 LH스타힐스아파트단지 부근 정류소에 10분 후면 도착하는데 그는 그 버스의 단골손님이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양복 정장의 노타이에 흰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으로 버스에 올라 홍성읍내로 간다. 그렇다고 출근해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예외가 없다. 

부인 문병갈 때와 똑같은 사이클 반복
그는 20여 년 전 은퇴한 전직 교장으로 지난해 7월 서울에서 내려와 내포신도시에 정착했다. 그때 이미 병을 얻어 함께 귀향했던 아내는 홍성읍내의 한 요양병원에 바로 입원해야만 했다. 불가피하게 별거해야 하는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정 노인은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홍성읍내로 문병을 갔다. 
“내가 매일 가면 아내가 좋아했어요.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대화를 나누면 아내는 알아듣는 시늉을 하며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았어요. 나는 요양병원에서 오전에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노인복지관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그러나 올해 2월부터는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방문면회가 제한되고 두터운 유리창 사이에서 잠깐 안부만 주고받는 비대면 면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후 아내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4월 21일 먼저 하직하고 말았다. 코로나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정 노인은 부부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 하게 되자 아내의 죽음도 앞당겨졌다고 씁쓸하게 회고한다. 
“비대면 면회로 잠깐 얼굴만 볼 수 있었을 뿐인데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같이 있어줄 때는 웃기도 하며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호주에 있는 두 딸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아내의 장례식에 오지도 못했다. 호주 정부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들의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출입국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해 둘째 딸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고, 지금 정 노인은 내포신도시에서 둘째 사위와 같이 살고 있다.  
요즘 그의 일과는 아내가 살던 때와 똑같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홍성읍에 나가는데 이제 갈 필요가 없는 요양병원 대신 제과점이나 카페, 김밥집 등에 들러 사람을 만나거나 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다가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일찍 귀가한다. 한때 노인들을 만나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도 보내고 무료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던 노인복지관은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기약도 없이 문을 닫은 상태라 마땅히 갈 데도 없다. 그래도 그는 아내를 면회하러 갈 때와 같은 사이클로 출근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외출한다.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주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집에 있으면 방에 뒹굴며 TV밖에 더 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매일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도 나누고 걷기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잖아요.”
실제로 그는 100살을 10년 앞둔 노인답지 않게 몹시 건강해 보였다. 자동차 면허증은 반납해 버렸는데 다행히 지난해 7월 홍성 생활을 시작할 무렵 75세 이상 노인들에게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게 해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교직생활만 48년 10개월을 했다고 회고하는 정 노인은 대전사범학교 졸업 후 주로 예산군에서 순회근무를 했다. 같은 생활권인 홍성읍내에도 제자들이 많다. 또 내포의 이웃 중에 제과점, 카페나 식당을 홍성읍내에서 경영하는 사람도 많아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어주고 가족처럼 지내기도 한다. 뜻밖에 만난 제자가 동창생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서 대접 받기도 하고 자신이 사주기도 하면서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집에서 종일 혼자 지내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보람되다는 것이 정 노인의 고백이다.  

홍북 용산리 출신 예산서 평생 교직생활
1931년 홍성군 홍북읍 용산리 용두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6년제 홍성중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을 마치고 대전사범 본과 1학년에 입학했다. 6ㆍ25 전쟁이 나던 해였는데 그때 마침 학제개편으로 3년제 홍성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대전사범과 둘 중 한 곳을 선택하는 문제로 갈등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문계고는 대학을 가지 못하면 취직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졸업하면 교직 진출이 보장되는 대전사범을 택했다. 
“선생님이 서울로 진학할 것을 권했지만 대전사범은 학비가 들지 않았어요. 당시 구 병역법 63조에 따르면 초등학교 정교사가 되면 2세 국민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며 병역도 면제가 돼 군대도 안 갔어요.”  
교사가 된 그는 마지막으로 예산중앙초교, 응봉초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정년은퇴를 했다. 슬하에 2남3녀를 뒀는데 불행하게도 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째 아들은 빼어난 미남으로 MBC 탤런트를 한 고 정태섭 씨다. MBC의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 '이노인‘ 역을 맡아 출연했으나 2001년 8월 1일 직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 지금도 정 노인은 큰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아두고 가끔씩 보며 못 잊어 한다. 
“큰아들이 MBC탤런트실장을 두 번이나 했고, ‘전원일기’에서는 서울 아저씨 역할을 했지.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 얼마 후 ‘전원일기’도 끝나더만…. 요즘도 재방을 하는지 우리 아들을 텔레비에서 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
‘전원일기’는 농촌을 소재로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 2개월 동안 1088회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다. 

아침 8시면 반드시 자택 부근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 나와 내포환승센터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여유있게 기다린다. 주말도 마찬가지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동규 어르신은 홍성읍내로 나간다.
아침 8시면 반드시 자택 부근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 나와 내포환승센터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여유있게 기다린다. 주말도 마찬가지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동규 어르신은 홍성읍내로 나간다.

그런데 작년에는 서울의 둘째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까지 죽고 나니 아내마저 그 충격으로 쓰러졌어요.” 
그 후 정 노인 내외는 고향에서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돌아왔다. 처음 은퇴한 후에는 둘째딸이 먼저 가서 정착한 호주 시드니로 떠나 5년간 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고향 홍북으로 도청을 이전한다는 고국의 뉴스를 듣고 귀국을 재촉했다. 
“호주에서 5년을 살면 영주권이 나옵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왔는데 그때 주변에서 많이 만류를 했죠. 시드니에서 한인회에도 나갔는데 거기도 내 제자가 있었어요.”
호주한인회에서 부회장도 했다고 한다. 
“한번은 학교 선생을 했으니 동요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고향의 봄’을 직접 지휘해서 합창을 했는데 모두 노래하다말고 떠나온 고향 생각을 하며 눈물을 쏟아내더군요.”
정 노인은 요즘 긴 장마에 연일 많은 비가 쏟아져도 삽교천을 끼고 있는 고향은 범람하지 않는다며 한때는 상습침수지역이었다고 회고했다. 
“5공화국 시절 홍북읍 용산리 용두마을에 삽교천이 범람해 크게 수해를 입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우리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충남도지사에게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피해가 없도록 삽교천을 정비하라고 지시했어요. 도지사가 대답은 했지만 예산이 없어서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자 전 대통령이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 주겠다며 나머지 모자라는 부분은 도에서 책임지라고 했어요.” 
그때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바로 삽교천 정비공사가 시작됐다. 곡선 형태의 물길을 곧게 펴고 제방도 높여 견고하게 쌓았다. 그 후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홍수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단다. 
“전두환 씨에 대해 나쁜 평가가 많지만 우리는 그때 입은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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