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그 생명력에 대한 관심… 모두 이 공간에
공간과 사람, 그 생명력에 대한 관심… 모두 이 공간에
  • 노진호
  • 승인 2020.10.2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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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응노의 집 ‘창스’ 4기 입주작가 - 정직성
내달 1일까지 개인전… 타이틀은 ‘기계 The Mechanic’
레지던시 돌아보면… “배우고 생각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홍성군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은 이달 7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제4기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개인전’을 연다.

3명의 입주작가가 릴레이로 펼치는 이번 전시회 두 번째 주인공은 정직성 작가(44·작가명)이다. 전시 두 번째 날이었던 22일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 그리고 두 번째 주인공인 정직성 작가. 사진= 정직성 작가 제공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 그리고 두 번째 주인공인 정직성 작가. 사진= 정직성 작가 제공

오는 11월 1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그의 스물네 번째 개인전이며, ‘기계 The Mechanic’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시리즈 전시 중에는 세 번째다.

여섯 작품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 테마는 자동차 정비사의 작업장이라는 ‘공간’이다. 정 작가는 “난 지금까지 다양한 소재의 시리즈를 제작했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내가 속한 계급의 생동감을 반영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회화작가로서 20여년간 활동하며 서민들이 사는 연립주택, 재개발 건축 현장, 교외지역 등 ‘공간’에 대해 주목해 왔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 서문에서도 ‘공간은 그곳을 형성하고 있는 형상의 모양새와 배치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관심사는 결국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의 관심일 것’이라며 ‘공간의 움직임, 리듬, 속도와 기세, 생명력, 화음과 불협화음을 그림의 표면 이미지로 드러내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사에 인용된 전시 서문은 전문이 아닌 발췌된 내용이다)

정 작가는 “지금까지 그린 공간들은 내 삶의 문제와 붙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연립주택에 살면서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자주 했고, 그래서 그런 공간을 그리게 된 것”이라며 “이응노 선생님도 그리는 대상이나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나 생명력에 대한 관심 같은 게 비슷하다 생각했다. 이 장소(이응노의 집)에서 전시하는 만큼 선생님에게 더 접근하고 싶었고, 붓질도 ‘문자추상’과 구체적으로 연결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계’ 시리즈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정 작가는 “재개발 건축 현장의 기계는 규모가 크고 가깝게 느껴지지 않지만 자동차 공업사의 기계는 다른 느낌의 리듬감이 있다. 그래서 따로 묶어 연작을 제작하게 된 것”이라며 “공업사의 기계는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비사의 직관적 영역에 있다. 노동요의 느낌이 더 담긴 추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남편이 자동차 공업사를 했었다. 그때의 관찰이 도움이 됐다”고 부연했다.

정 작가는 자동차 정비사의 작업장이라는 공간, 그 공간을 담은 작품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전하고자 했다. 그는 “작업장의 생동감이 더 느껴질 수 있도록 흐르는 듯 한 붓질이나 원색의 밑색을 사용해 뛰어오르듯 그렸다”며 “대형 작품(200호·194㎝×259㎝)으로 한 것도 대상의 숭고함을 극대화하려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정 작가와의 대화는 이응노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레지던시 생활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연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며 “코로나19로 외부(일반 대중)와의 소통은 부족했지만 입주작가들의 대화는 더 깊어지며 내부적 발전은 계속됐다”고 평했다. 이어 “이응노 선생님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고, 내 작품과 관련한 평론가 매칭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정 작가는 지난 5월 내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기에서 새 영감을 받아 활동을 확장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레지던시 생활을 두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다시 만나보니, 그 뜻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이응노마을에 있는 별의별 공방 박혜선 작가에게 서예를 배웠고, 참골도예 인유진 선생님에게 테라코타 수업도 받았다”며 “이응노마을에서 이뤄진 그 배움은 생명력에 대한 관심을 끌어갈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 작가의 이 배움은 전시로도 이어진다. 그는 오는 11월 2일부터 28일까지 별의별 갤러리에서 별의별 공방 박혜선 작가,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 민택기 작가와 함께 ‘나 자신의 말(My Own Words)’이라는 주제의 릴레이 전시회를 연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는 서예 공부를 하며 얻은 성과를 선보이는 것이다. 릴레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고 (공간상의 한계로) 디스플레이만 바뀌게 된다”며 “서예라는 주제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에게 남은 두 달 동안의 계획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 작가는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유진갤러리에서 현대자개회화시리즈 개인전을 연다. 내 최신작을 볼 수 있는 자리”라며 “12월 개최되는 서울아트쇼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것 같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인터섹트 시카고에도 출품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정 작가의 다음 행보도 궁금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모든 작가가 힘든 시기다. 내년 일정도 코로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예측하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작품의 내실을 기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외활동은 위축됐지만 그 시간 여기에 와서 속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며 “정말 좋았던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 중”이라고 부연했다.

인터뷰 말미 ‘이곳에서의 시간을 작품화한다면 어떤 장면을 그리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우연히 접한 고암의 작품이 날 이곳에 오게 했다. 굉장히 한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이었고, 내 관심사에 미리 다가선 선배를 만난 듯 해 반가웠다”며 “이곳에 와 선생님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그분이 살아온 아름다운 환경을 보며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어 “이응노 선생님은 생명력 넘치는 민중들의 에너지를 잘 풀어낸 분이다. 방식은 달라도 한국적인 것, 가난하지만 비루하지 않은 품격 같은 게 나와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 그런 측면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더했다.

끝으로 정직성 작가는 “작업의 성격은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과 밀접하다. ‘공간’이라는 테마를 유지하는 건 그런 이유도 있다”며 “이런 아름다운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들과의 교류는 흥미로웠다. 이 공간의 사람들과 소통한 것은 내게 매우 소중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한 관람객이 정직성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한 관람객이 정직성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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