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반 ‘미용’… “다시 보고픈 헤어디자이너”
인생의 반 ‘미용’… “다시 보고픈 헤어디자이너”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1.07.01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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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게] 내포 ‘더얼반 헤어’
박인재 원장, 트럼펫 접고 열일곱에 자격증 취득
서울서 경력 쌓고 올봄 내포에… “亞 최고가 목표”
지난 5월 18일 개업한 '더얼반 헤어' 박인재 원장. 그는 자신의 첫 미용실 장소로 신생도시인 내포신도시 혹은 고향인 예산군을 오래전부터 염두해 두고 있었다. 사진=황동환 기자
지난 5월 18일 개업한 '더얼반 헤어' 박인재 원장. 그는 내포신도시를 기반으로 아시아 최고까지 노리고 있었다. 사진=황동환 기자

트럼펫 연주가 들릴 것 같은 미용실이 있다. 지난 5월 18일 내포신도시 충남도교육청 인근(청사로 센텀시티 1층)에 문을 연 ‘더얼반 헤어’ 박인재 원장(35)의 옛 이야기를 듣고 나니 든 생각이다.

박 원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트럼펫티스트’였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제 구강구조를 보고 트럼펫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며 “예산초·중 브라스 밴드 수상이력 덕분에 음악 특기생으로 예산고등학교에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용사’가 됐다. 박 원장은 “음악적 재능을 10점 만점으로 보면 난 4.5점 정도로 판단했다”며 “진로를 고민하다 발전가능성을 보고 미용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미용 일을 하던 선배를 보며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꾸미기 좋아했던 나이라 더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남자가…”라며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격증 취득을 조건으로 승낙을 받았다. 박 원장은 열일곱(고등학교 1학년)에 정식 미용사가 됐다.

이때부터 오직 그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미용사가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또래들이 대입 준비에 여념이 없을 고3 겨울방학 때 그는 미용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가 처음 노크한 곳은 서울 압구정동의 미용실이었다. 하지만 그곳 원장은 ‘군필’을 채용 조건으로 내걸었다. ‘공백 기간이 있으면 배운 기술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발길을 돌려 청담동 세르본 미용실에 취업했고 이후 압구정동, 가로수길, 잠실 등에서 경력을 쌓아나갔다.

미용사들 사이에는 ‘같이 늙어가는’ 고객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평이 있다고 한다. 박 원장은 “내포는 신생도시라 그런지 주민들의 연령대가 나와 비슷했다”며 이 지역을 선택한 배경을 알려줬다.

‘더얼반 헤어’는 박 원장의 첫 사업체다. ‘모험’처럼 시작했지만 ‘확장’의 계획도 있었다. 또 내포를 기반으로 서울까지 진출해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도 품고 있었다.

박 원장은 “예전엔 일본이 단연 앞서 있었지만, 이제 패션·미용 분야만큼은 한류 바람을 타면서 일본을 역전했다”며 “헤어뿐 아니라 화장품·성형 등 뷰티분야는 한국이 아시아를 선도하고 있고, 한국에서 최고가 되면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단점만 보완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며 송중기·현빈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을 예로 들었다. 박 원장은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개성을 살리는 쪽으로 트렌드가 변화하는 것 같다”고 보탰다.

박 원장은 ‘더얼반 헤어’ 미용실을 개업하면서 원칙을 정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인성이 좋은 원장이 기술도 좋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다시 보고 싶은 디자이너”를 강조했다. 그간의 열정과 지금의 노력을 보면, 이미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포신도시 충남도교육청 인근에 있는 더얼반 헤어. 사진=황동환 기자
지난 5월 문을 연 더얼반 헤어 내부. 사진=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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