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7… ‘마왕’에게 쓰는 편지
20141027… ‘마왕’에게 쓰는 편지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29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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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편집국 부국장

10월 27일은 ‘신해철’이란 뮤지션이 2014년 세상을 떠난 날이다. 필자는 그 띠 동갑 연예인의 오랜 팬이다. 사실 ‘신해철’이라 부른 적도 별로 없다. 필자에게 ‘respect(리스펙트·존경)’란 영단어는 그를 위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신해철’이 아니라 ‘해철님’이었다.

필자가 그의 부고를 접한 건 전국체육대회 취재를 위해 찾은 제주의 한 모텔에서였다. 그날 일정이 끝나고 돌아와 비보를 접하고 한참이나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날이 다시 돌아올 즈음 이렇게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 ‘마왕’을 소환하곤 한다. ‘해철님’을 아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크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니니)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가 만든 곡 중에는 ‘나에게 쓰는 편지’란 노래가 있다. 이 계절과도 제법 잘 어울릴 법하니 모르시는 분은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마왕’의 부재(不在)가 왠지 더 크게 느껴지는 2021년, 필자도 ‘님’께 편지 한 장 띄우려 한다.

당신께서 데뷔하신 1988년은 정말 특별했던 해입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저서를 통해 “‘그대에게’는 대학가요제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트랙이며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높은 완성도와 폭발적인 대중성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갖춘 위대한 데뷔곡”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 무대를 기억합니다. 어쩌면 인생 첫 번째로 무언가에 완전히 매료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다시 록밴드로 돌아온 넥스트 1집, 중학교 1학년 봄소풍 때 받은 용돈 5000원으로 그 카세트테이프를 사들고 돌아오는 내내 느꼈던 설렘을 또 기억합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떠나고 5년 후인 2019년 ‘아, 신해철!’이란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변가로 알려진 마왕께서 전한 대화의 기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듣는 것’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정치가는 달변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야 막론하고 말은 많은데 갖춰야 할 ‘기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노래를 통해 ‘사람처럼 살고 싶거든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라고 신신당부한 이유를 새삼 깨닫습니다.

당신께서 영국 유학 중 만든 앨범에 실린 ‘일상으로의 초대’란 노래도 참 좋습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분명 이 곡은 사랑 노래지만, 팬데믹 속에선 ‘일상’이란 단어 자체가 ‘약속·헌신·운명·영원(Here I stand for you 중)’처럼 특별하게 들립니다. 단계적·점진적으로 회복시킨다니 믿어봐야겠지요. 우리의 일상은 이미 단계적·점진적으로 망가졌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곡 ‘민물장어의 꿈’ 가사를 군 복무 시절 관물대에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그렇게 세상에 맞춰가며 살려 아등바등했고 그렇게 지쳐갈 즈음 당신은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퍼 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며 꾸짖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돈(Money)이 ‘사랑보다도 위에 있고 종교보다도 강하다’고 한 당신의 말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아, 신해철!’이란 책의 에필로그는 딱 세 문장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했고, 더할 것도 없어 그 세 문장을 빌려 이 글을 맺습니다.

당신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네요. 마왕! 그립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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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2021-10-29 11:36:02
마왕의 무대위 모습이 그립습니다.. 기자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