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홍성무대의 이응노 이야기
[기고] 홍성무대의 이응노 이야기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1.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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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배근 국무총리 자문위원

홍성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고픈 이응노 화백이 살아 온 길을 홍성극단의 창작 초연 공연(11월 13~14일 광천문예회관)으로 만났다. ‘ㅅㄹㅇㅍㅎㅇ! (사람이 평화여!-이응노 이야기)’이다. 1993년 창단된 극단 홍성무대 전인섭 대표의 제작 및 연출과 조정희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성공작이다.

무대는 로마 군단이 프랑스에 건설한 듯한 르네상스 형식의 백색 대리석 신전 기둥이 사선으로 도열해 있다. 중앙에는 아뜰리에 공간이 있고, 이중화자 기법으로 등장하는 2명의 이응로 화백을 만난다. 동양의 정신을 화선지에 흑백 먹물로 담아낸 작품을 극화 시킨 무대 장치와 함께한 배우들의 열과 성이 전달돼 마음속 깊은 울림을 느낀다. 강인하면서도 애잔하게 흐르는 음악과 조명의 어울림은 대극단에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예술의 메카인 파리에서 살다가 죽은 그의 삶만큼이나 거대한 스토리는 깊은 떨림을 전달했고, 사군자, 묵죽화에서 추상화까지 그의 다양한 예술 소재와 기법,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을 표현한 연극은 한류가 여기부터 시작했음을 느끼게 한다.

변방의 땅에서 온 낮선 이방인이라 칭하는 작은 동양인의 예술을 서양인들이 인정하며 감상하기에는 선입감에 따른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이겨내며 이룬 그의 노고는 태생에서 출발한 예술혼의 바탕이 있었음이라. 민족이란 한계를 넘어 세계화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혼을 심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채로운 표현 방법으로 남겨진 동양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다작의 근면성과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끔 막의 전환마다 강한 여운을 준다.

이번 공연의 플롯을 간단히 분류해 감상 느낌을 이어간다. 크게 다섯 소재의 작품을 대형 프로젝션으로 연출했는데 배경의 크기와 프로젝터 설치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인지 화면 비율이 언발란스 했다. ‘일그러진 화상’이란 표현이 겹쳐 머릿속을 내내 어지럽힌 작은 오점으로 남는다.

선진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먼 길을 떠나왔건만, 유럽에서의 작품 소재는 도리어 한국을 그리며 생활에 함께한 자연의 위대함을 화폭에 담는다. 동양화 기법으로 한국의 산하를 그리며, 사군자를 거침없이 친 그의 젊은 날 화풍은 난을 더욱 고고하게 키웠고, 대나무 숲은 바람까지 몰고 온 듯 강인함과 시원스런 감명을 준다. 갈등의 가정사와 정치적인 변혁의 길목에서 탄생한 옥중화는 폐쇄된 공간의 마음을 표출하며, 열악한 조건에서 탄생한 콜라쥬 형식의 작품들은 한 방울, 한 방울 인고의 땀이 찍힌 느낌으로 다가왔다.

삼라만상을 바위에 그린 암각화의 영원성은 울산 반구대에 남겨진 역사 기록같이 후대에 남을 기록으로 전달이 되고, 통일무는 분단된 조국을 표현한 인간군상들의 명료한 화합을 가르쳐 준다. 막이 전환된 여기에서 밝은 미소와 웃음을 얻어야 하는데, 다시 총칼에 희생된 영혼의 부름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이 손을 맞잡는 평화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대한제국 시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조국의 독립, 군사 독재정권의 압제에 불편한 누명까지 뒤집어쓴, 80여년 역사가 담긴 선생의 예술이 필자에게는 무척 난해하다. 하지만 한류의 예술 분야가 세계에서 우뚝 솟은 긍정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식한다. 이념 갈등의 희생자로 그의 말로는 힘들었지만 남겨진 유산은 민족의 빛과 홍성의 영광을 남긴다. 덧붙여 홍성군 이응노의 집에 이 연극을 상시 방영하는 작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 역시 예술의 메카라는 파리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해도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충분함을 느끼기에 홍성무대의 앞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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