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좋은 게 꼭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칼럼] 좋은 게 꼭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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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홍성YMCA 사무총장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는 도덕을 배우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윤리를 배운다. 도덕과 윤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도덕과 윤리의 차이점을 말할 때 주로 ‘장발장’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장발장이 배고파서 빵을 훔쳤을 때 훔친 것은 바람직한 행동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장발장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덕적인 생각이다. 윤리의 생각은 장발장이 왜 배가 고팠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빵을 훔치게 된 경위를 보면서 장발장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이를 방조하는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을 배우고 고등학교부터 ‘이상적 가치의 당위성을 따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윤리적 고민이 많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유팩 수거 사업이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우유팩은 다른 재활용 대상과 비교해 재활용률이 터무니없이 낮아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데 홍성에서는 필자의 단체(홍성YMCA)가 카페 12곳과 학교 6곳을 대상으로 우유팩을 수거한다.

학교는 우유팩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서 괜찮은데 문제는 카페다. 카페는 손님을 많이 받기 위해 창고를 최소화해 운영한다. 그래서 카페 대부분은 우유팩을 따로 모아둘 공간이 부족하다. 여기서 필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창고 공간이 부족한 카페들은 우유팩을 외부에 보관하게 되는데, 이렇게 외부에서 보관하는 우유팩을 폐지를 수집하시는 분들이 갖고 가신다. 우유팩을 갖고 가지 말라고 종이에 써서 붙이면 그 경고문도 결국 종이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갖고 가신다. 문제는 이렇게 가지고 가시는 우유팩은 폐지를 처리하는 회사로 납품하게 되고 폐지를 납품하는 회사는 우유팩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유팩을 폐기한다. 그런데도 회사가 우유팩을 받는 이유는 폐지를 수집하는 분들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유팩을 별도로 보관하는 카페의 입장에서는 우유팩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세심한 실천으로 우유팩을 올바르게 재활용시키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우유팩을 모았지만, 하룻밤 사이에 말도 없이 우유팩이 사라지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원순환 운동을 하는 필자의 처지에서도 정성스럽게 모인 우유팩이 단순 폐기되는 상황이 매우 답답하다.

폐지를 수집하시는 분들이 우유팩을 가져가시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 우유팩을 사주는 회사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공감하고 실천하려고 하는 카페들의 고민도 이해가 된다. 서로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판단을 하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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