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양심수’ 이태복 전 장관 별세
‘세계의 양심수’ 이태복 전 장관 별세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1.12.06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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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급성심근경색…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5공 정권 시절 전민노련 활동… 반독재 노동운동 족적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지난 10월 개최된 충청남도 독립운동가 추모‧선양 학술포럼 좌장을 맡았던 故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내포뉴스DB
지난 10월 개최된 충청남도 독립운동가 추모‧선양 학술포럼 좌장을 맡았던 故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내포뉴스DB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일 오후 3시경 급성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이 전 장관은 지난 6월 홍성에서 열린 조선의 청백리 삼산 이태중 청백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지난 10월 충청남도 독립운동가 추모‧선양 학술포럼 좌장 등을 맡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또 지난 1일 수원에서 개최된 5·18민주화운동 윤상원 열사 기념행사에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고인은 예산중~서울 성동고~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쌓은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 대학 재학 중이던 1971년 ‘위수령’으로 강제 징집됐다.

고인이 현장 노동 경험을 토대로 1977년에 설립한 출판사 광민사를 통해 펴낸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노동의 역사 △유한계급론 등은 당시 학생운동권의 필독서로 한국 노동운동의 이론화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이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던 1980년 5월 노동운동 조직인 ’전국민주화노동자연맹’(전민노련)을 결성해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하는 비공개비합법 노동운동을 도모했다. 전민노련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결합해 전두환 정권과 적극적으로 맞서자는 선도투쟁론을 주장하는 등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고인은 1980년대 ‘학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1986년 앰네스티의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고,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석방 탄원으로 1988년 가석방됐다. 석방 이후 1989년 ‘주간노동자신문’, 1999년 ‘노동일보’를 발행하는 등 노동운동의 이론화와 대중화에 매진했던 고인은 1990년대 말 이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운동’을 전개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고인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07년 기름값, 휴대전화비, 카드수수료, 약값, 은행 금리 인하 등을 요구하는 ‘5대 거품 빼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는 등 대중적 국민운동에 참여했으며, (사)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 (사)인간의대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노동운동가 출신인 부인 심복자 씨와 자녀 이향복·이예복·이건복(동녘출판사 대표)·이화복·이영복(문화유통북스 대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5시이며,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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