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산, 우리글의 메아리… “한글 없인 한류도 없다”
수암산, 우리글의 메아리… “한글 없인 한류도 없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2.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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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응섭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 관장
40여년 한글 연구… 中·日·독일 등 세계 곳곳서 전시회
2014년 박물관 건립… “청소년들이 한글의 가치 알아야”
수암산 자락에 있는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에서 심응섭 작가를 만났다. 사진=노진호 기자
수암산 자락에 있는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에서 심응섭 작가를 만났다. 사진=노진호 기자

충남도청에서 자동차로 5분만 달려 신리마을회관 근처에 가면 ‘한글이 나라의 힘이다’라고 새겨진 돌 솟대를 볼 수 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멋진 건물이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이다.

2014년 이 박물관을 만든 ‘늘빛’ 심응섭 작가는 서예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한글문자조형 연구로 가장 아름다운 문자 예술서(藝術書)로서의 세계적 위상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내포뉴스는 마흔한 번째 지면에 그의 이야기를 싣기로 했다.

심응섭 작가(78)는 서산초~서령중~공주사대부고~건국대 행정학과를 나왔으며, 건국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서령고 교사, 서산시 도시계획위원, 혜전대 교수, 순천향대 명예교수, 내포문화예술원 이사, 한글문자조형연구소장 등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서예와 행정학이 왠지 안 어울리는 듯했지만, 곧 의문은 해소됐다.

심 작가는 “행정은 협업이고 협력이 중요하다. 문자 역시 자음과 모음의 협업이다. 그래서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혜전대에서 2008년 정년퇴임 후 중국 천진공업대 한국교육원 고문교수로도 1년 있었고, 순천향대는 개교 때부터 강의를 했다. 고맙게도 2008년 명예(종신)교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명종태실 비문, 해미 순교비 및 탑문, 독립유공자 이명종 선생 비문, 유관순 열사 동상 비문, 4·4독립운동기념탑 비문, 서울역 철도박물관 현판, 보령종합경기장 조형물, 순천향대 도서관 훈민정음 서문, 청운대·혜전대 설립자 이종성 선생 흉상, 홍주순교성지탑 등 그의 글씨가 새겨진 곳은 정말 많다. 홍성군청 인근 역사인물들의 흉상에서도 그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심응섭 작가가 인터뷰를 기념해 기자의 이름을 써주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심응섭 작가가 인터뷰를 기념해 기자의 이름을 써주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가장 의미 있거나 기억에 남는 것을 뽑아 달라는 철없는 질문에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그는 “베이징과 도쿄, 오사카, 모스크바, 베를린 등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알렸다. 나름 자부심이 있다”고 더했다. 이어 “전국의 검찰청에 있는 ‘검사선서’도 내 글씨인데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뉴스 배경으로 등장한다”며 “덕분에 많이 소개되긴 했다”고 보탰다.

그의 남다른 한글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심 작가는 “나도 처음엔 한문을 썼다. 그러다 한글 서예를 폄하하는 경향을 보게 됐고, 우리글인데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한글도 한자처럼 새로운 창작의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며 “참 많은 전시회를 다녔다. 무엇보다 자연을 관찰했다. 자연 속에서 힌트를 얻었고, 거기에 한글의 미적 감각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75년 서울 안국동에 있는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연 개인전과 제2회 한글문화상품 공모전 대상 등의 자료를 보여줬다.

수암산 자락에 있는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은 그의 지난 시간이 깃든 곳이다. 심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려 만든 곳이다. 한글 창제로 우리 문화는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고유의 문화로 발돋움했다. 또 한글은 독립운동의 기반이 됐다. 그렇기에 일제도 한글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서예를 하면서 가진 첫 꿈이 서예 종주국인 중국 한복판에서 한글 전시를 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뤘다. 그 다음 해에는 일본 동경에서 전시를 했는데 한 일본 서예가가 ‘일본문자로는 이런 아름다움이 불가능하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이어 “독일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간호사와 광부로 이역만리 외국 땅에 간 그들이 보내주던 응원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예란 조형성과 함께 사상성이 구비돼야 예술성을 갖춘다. 서예가이자 시인인 그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심 작가는 “훌륭한 글이 되려면 반드시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난 긍정적인 생각을 전하려 노력한다. 사회가 아름다워져야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다”며 “언론도 자극적인 사건보다 이 사회를 밝게 할 문화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미정 미술평론가는 “늘빛 선생의 글씨에는 운(韻)의 메아리가 있다. 그건 단순한 형태로써의 글씨가 아니라 어떤 표정이며, 분명한 의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심 작가는 한글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MB정부 시절 G20 정상회의가 개최될 때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하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나라의 중심이며 얼굴격인 세종로 한복판에 세종대왕을 앉혀놓고 우리글이 아닌 한자로 그것도 ‘門化光’이라 거꾸로 내걸고 G20 정상회의를 한다는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낮 뜨겁다"고 기고한 바 있다.

심응섭 작가는 한글을 위해 아니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있다. 그는 “예산은 서예의 본고장이다. 여기(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를 거점으로 한글문화가 꽃 피길 바란다. 간판부터 좀 바꿨으면 좋겠다”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한글의 가치를 아는 게 중요하다. 한글이 없인 한류도 없다. BTS 같은 유명인들이 한글을 더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심응섭 작가가 선물한 ‘내포뉴스’
심응섭 작가가 선물한 ‘내포뉴스’
심응섭 작가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담긴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 사진=노진호 기자
심응섭 작가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담긴 늘빛한글문자조형박물관. 사진=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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