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동기 트라우마, 좌절 속에도 희망은 있다
[칼럼] 아동기 트라우마, 좌절 속에도 희망은 있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2.02.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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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충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자문위원·마음두레 대표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게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받던,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에서 받던 상처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준다. 지난해 말 필자의 사무실 작은 화분에 농장에서 가져온 알로에 모종 2개를 심었다. 화분을 지극정성으로 키웠지만 오히려 과습이 문제였는지 알로에는 시들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올해 초 분갈이를 했는데, 한 알로에는 이미 뿌리가 썩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고, 나머지 하나는 뿌리가 살아 있어 통풍과 배수가 잘되는 화분과 흙으로 교체해 줬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서 그 알로에는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늘을 향해 알로에 줄기가 당당히 뻗어 올라가고 새로운 줄기가 그 안에서 또 자라나고 있었다. 알로에 줄기에 상처는 남았지만 점점 튼실해 지면서 상처가 오히려 훈장처럼 남게 됐다.

하와이 카우아이섬은 1950~70년대 섬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을 앓았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1955년 이 섬에서 출생한 신생아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40년 동안 이 연구를 주도했던 심리학자 에미워너 교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833명 중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분석했더니 3분의 1인 73명이 출생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했던 것이다.

그 놀라운 결과의 비밀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최소한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의지할 수 없는 부모 대신 조부모나 친척, 마을의 이웃이나 학교 교사 등이 그 역할을 해줬다. 언제나 내 편이 돼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의 핵심이었다. 에미워너 교수는 삶의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긍정적인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명명했다.

필자는 지난 8년간 충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 사례전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다양한 아동학대 사례와 담당 직원들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학대 피해 아동이 원 가정으로 복귀해야 되는데 가해 부모가 아직 변화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해 부모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 부모들 또한 학대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방임, 학대 등이 되물림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즉 발달기에 경험하는 정서 및 신체적 학대, 방임 등의 생애 초기 정신적 트라우마(early-life stress)는 성인기의 정신건강에까지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는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성격장애,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정신건강의 문제 발생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단일한 외상 사건을 경험한 경우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다양한 외상 사건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우는 복합외상의 특성을 보인다. 그 특성들은 정서조절, 자기통합, 대인관계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행복한 삶이란 상상할 수 없고 매우 부정적인 삶의 인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아동기란 양육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아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학대를 가한다는 것은 아직 자라지도 못한 싹을 짓밟는 행위이며 공동체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하와이 카우와이 섬의 연구처럼 부모를 대신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아이를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건강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나마 위로와 희망을 준다. 모든 학대에 노출된 아동들이 이러한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행복한 아동기를 보호할 책임은 우리 사회 전체에 있다. 이웃, 학교, 지역사회가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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