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혐오·왜곡·감정싸움 없이 역사를 이야기할 순 없을까
[데스크 칼럼] 혐오·왜곡·감정싸움 없이 역사를 이야기할 순 없을까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5.08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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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편집국장

‘역사(歷史)’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렇기에 많은 논쟁을 낳기도 한다. 얼마 전 지역에서 열린 한 특강에서도 ‘역사적 논쟁’이 있었다. “전두환 같은 이는 결국 벌을 받는다. 그 손자가 대신 사과를 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라는 강사의 말이 발단이었다. 그러자 한 청중이 “왜 특강 주제와 무관한 정치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졌다. 어떤 청중은 ‘좌파’ 운운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강의에서 이런 정치적 이야기가 적합한지, 다수의 청중과 공유하는 자리에서 개인의 생각으로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등의 문제는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역사란 게 논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던 자리였다.

역사학자 심용환은 ‘혐오와 왜곡, 감정싸움 없이 한국사를 이야기하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오늘날에는 자신과 유사한 관점을 가진 사람하고만 소통하며 기존 관점을 강화하는 확증 편향이 문제시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친일파 청산 등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논쟁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다. 저자는 더 나은 논쟁을 할 수 있도록 올바른 관점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 서술로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과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정치계에서도 역사와 관련된 ‘설화(舌禍)’가 잇따랐다. 어떤 국회의원은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당시 말은 선거 때 표를 얻으려고 한 것”이라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그는 “4·3사건 기념일은 격이 낮다”라는 말로 비난받기도 했다. 또한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 등의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같은 당 다른 의원도 있었다.

정치계의 이 같은 ‘사건’은 말을 많이 하고, 늘 주목받는 위치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말실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반복된다는 건 실수가 아닌 신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높은 곳에서 큰일 하시는 분들이니 아닐 거라 믿는다.

5박 7일 일정으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관련해서도 ‘말’이 많다. ‘130조 vs 8조’로 알려진 방미 성과에 대한 논쟁, 가수인 돈 맥클린이 사전에 연락받았다고 밝히고 미국 측이 기타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대통령실은 극구 즉석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하는 ‘아메리칸 파이’ 사건, 백악관이 핵 공유를 부인하자 심리적 안정감을 내세운 ‘핵 인지 감수성’ 논란 등으로 시끄럽다.

필자가 가장 의아했던 건 ‘무릎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지난 100년간 수차례 전쟁을 경험하고도 전쟁 당사국끼리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다. 나는 100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 문제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설득하는 문제에 있어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일본에 무릎 꿇으라고 했었나. 그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고 했던 것이 무릎 꿇으라는 것과 같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무릎을 꿇어야 했다면 훨씬 더 오래전에 그랬어야 했다. 항복문서에 서명하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 갑판 위에서나, 그들의 나라로 철수하기 전 대한민국 국민 앞에서 그랬어야 했다. 이번 ‘무릎 발언’으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무릎을 꿇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떠올랐다. ‘브란트는 무릎을 꿇었고, 독일은 다시 일어섰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본에 그런 걸 바란다면 정녕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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