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아늑하다… 보령은 그랬다
아름답다, 아늑하다… 보령은 그랬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8.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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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답사 ②보령

‘여행’은 우리들의 여가 활동 가운데 중요 선택지다. 유럽도 좋고 동남아도 즐겁고 가까운(?) 중국·일본이나 제주도 역시 끌리겠지만, 좋은 여행이 꼭 그 이동 거리로 담보되진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명소를 두고 사서 고생할 수도 있다. 내포뉴스는 월 1회 홍성과 예산을 제외한 충남의 시·군들을 답사(踏査)해 전하고 있다. 내포뉴스가 두 번째로 선택한 곳은 ‘보령시’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보령 충청수영성 영보정. 다산 정약용은 이곳을 “세상 경치 중 가장 뛰어났다”고 칭송했다. 사진=노진호 기자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보령 충청수영성 영보정. 다산 정약용은 이곳을 “세상 경치 중 가장 뛰어났다”고 칭송했다. 사진=노진호 기자
충청수영성을 오르며 마주한 오천항 풍경. 비와 바다 냄새가 적당히 섞이며 이날 여정의 좋은 기억 중 하나로 새겨졌다. 사진=노진호 기자
충청수영성을 오르며 마주한 오천항 풍경. 비와 바다 냄새가 적당히 섞이며 이날 여정의 좋은 기억 중 하나로 새겨졌다. 사진=노진호 기자

◆‘동백꽃 필 무렵’ 속 그곳… 놓쳐선 안 될 충청수영성

내포뉴스의 ‘충남 답사’ 두 번째 목적지인 보령을 찾은 건 처서(處暑)였던 지난 23일이었다. 전날까지 쨍쨍하던 날씨는 마치 속임수였다는 듯 아침부터 하늘은 우중충했다. 다행히 오전 일정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오후 내포신도시로 돌아오는 길엔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와야 했다. 하지만 보령은 그 수고스러움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보령에서 처음 발길이 닿은 곳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사적 제501호)이다. 조선 초기 설치된 이곳은 충청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하다 1896년 폐영됐다. 1510년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충청수영성은 현재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인 서문을 비롯해 진휼청과 강선암, 영보정, 보령 유격장군 청덕비, 내삼문, 장교청(객사) 등 1650m가 남아 있다.

충청수영성은 충남도청에서 자동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차에서 내린 후 돌계단을 올라 예쁜 석문을 통과하자 영보정과 장교청 가는 길로 나뉘어 있었다. 영보정으로 방향을 잡으니 빈민을 구제하던 진휼청이 나왔고, 진휼청을 돌아 조금 오르니 눈앞에 오천항이 펼쳐졌다. 시원한 오천항 풍경과 함께 비와 바다 냄새가 폐에 전해졌다. 그 순간 왜 이곳을 조선 유명 시인 묵객들이 찾은 천하 명승이라고 하는지, 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들이 캐스팅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 뒤로 영보정이 있었다. 영보정은 바다 건너 황학루, 한산사 등과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1878년(고종 15년) 화재로 소실된 후 터만 남아 있었지만, 조선 후기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보정도 등을 토대로 2015년 11월 18일 137년 만의 복원이 완료됐다. 다만 현재는 마루 보수 공사 중으로, 오는 9월 19일 마무리될 예정이다.

미술관과 허브랜드 등 5만평 규모의 개화예술공원은 자연 속 예술 쉼터라 불린다. 사진은 주차장에서 찍은 전경으로 주황색 지붕이 모산조형미술관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미술관과 허브랜드 등 5만평 규모의 개화예술공원은 자연 속 예술 쉼터라 불린다. 사진은 주차장에서 찍은 전경으로 주황색 지붕이 모산조형미술관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개화예술공원 내 모산조형미술관 1층에선 노대식 작가 개인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노진호 기자
개화예술공원 내 모산조형미술관 1층에선 노대식 작가 개인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노진호 기자

◆꿈꾸고 있다면,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개화예술공원

충청수영성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자연 속 예술 쉼터라 불리는 ‘개화예술공원’이다. 이곳은 부대시설을 포함해 16만 5289㎡(5만여평)에 달하는 예술종합단지다. 개화예술공원은 모산조형미술관, 보트·깡통열차, 금잔디 쉼터, 개화허브랜드, 리리스 공방, 감성가든, 관람열차, 바둑이네 동물원, 화인음악당, 오석견학장, 선녀연못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모산조형미술관 1층에서는 노대식 작가 개인전 ‘꿈 수집가(DayDreamer)’가 오는 9월 30일까지 열린다. 노 작가는 전시 홍보지를 통해 “무한한 꿈을 가진 아이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관객들에게도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미술관 2층은 모산국제조각레지던스 작품들이다. 2관은 노광 작가의 분홍빛 공간이고, 3관은 H양이란 가상 인물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특히 2층에서 본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꿈꾸고 있다면, 이룰 수 있다”고 우리를 응원했다.

미술관을 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눈에 띈 건 곳곳의 시비였는데 개화예술공원에는 400여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길의 끝에는 개화허브랜드가 있었다. ‘오늘도 행복하길’을 따라 걷는 이곳에선 구아바와 동백, 분깡, 호주매화, 티보치나, 비파나무, 유카, 부룬펠치아, 발렌타인 재스민 등을 볼 수 있었다. 개화예술공원에서의 시간은 허브랜드를 나와 ‘내 인생 반짝반짝 빛나길’을 따라 걸으며 마무리됐다. 이곳 입장료는 성인 6000원, 학생 4000원 등이며, 일부 코너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문의=041-931-6789).

1995년 5월 국내 최초로 개관한 보령 석탄박물관. 사진=노진호 기자
1995년 5월 국내 최초로 개관한 보령 석탄박물관. 사진=노진호 기자
보령 석탄박물관은 정말 실감 가는 곳이었다. 사진은 광부들의 식사 모습을 재현한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보령 석탄박물관은 정말 실감 가는 곳이었다. 사진은 광부들의 식사 모습을 재현한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집을 떠날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역사와 애환 담긴 석탄박물관

두 번째 충남 답사 보령의 세 번째 일정은 ‘석탄박물관’이었다. 이곳은 1995년 5월 18일 국내 최초로 개관했으며, 실내와 야외전시장으로 구분해 3800여점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다.

고생대·중생대 식물과 석탄 생성 과정 등의 설명으로 시작되는 실내전시실 1층은 보령 성주 산탄지 모형과 영보탄광 모형, 광차 모형과 각종 장비 등을 볼 수 있다. 석탄에 관해 공부한 후 2층에 오르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석탄박물관 2층은 굴착기 터널 뚫기, 광차 밀기, 떨어지는 광물 잡기, 곡괭이로 석탄 캐기, 막장 체험 등 게임과 체험 공간이다. 답사 당일에도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석탄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지하 400m로 내려가는 체험이었다. 이 수갱 체험 승강기는 불과 1분 만에 지하 400m로 하강한다. 실제로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지만, 누군가는 공포를 느낄 정도로 실감 나게 만들어 놓았다. 승강기에서 내리면 광부들의 작업 모습이 펼쳐진다. 특수 음향효과와 어우러져 굴진과 채탄, 운반작업 등이 더욱 생생하다.

석탄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집을 떠날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4주걱을 담지 않는다’, ‘도시락 보자기는 파란색과 붉은색 외에는 쓰지 않는다’, ‘갱내에선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죽은 혼을 내보내기 전에는 작업하지 않는다’ 등 금기 사항을 보며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들 온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석탄박물관 야외에선 광차와 권양기 등을 전시하며, 어린이 놀이시설과 연탄 만들기 체험장 등도 있다. 석탄박물관 관람료를 1000~2000원이며, 하절기(3~10월)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문의=041-934-1902).

고즈넉한 분위기의 성주사지. 멀리서 사진만 찍고 가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길 권한다. 사진=노진호 기자
고즈넉한 분위기의 성주사지. 멀리서 사진만 찍고 가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길 권한다. 사진=노진호 기자
성주사지 입구에는 홍보관과 체험실이 있는 천년역사관이 있다. 그곳에 있던 성주사 가람 배치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성주사지 입구에는 홍보관과 체험실이 있는 천년역사관이 있다. 그곳에 있던 성주사 가람 배치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쓸쓸하게 보이지만, 다가서면 아름다운… 성주사지

석탄박물관을 나와 향한 곳은 ‘성주사지(聖住寺址)’였다. 이곳은 백제시대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절로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는 호국 사찰이다. 백제 멸망 후 폐허가 됐다가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무염대사가 크게 일으켜 신라 문성왕이 성주사라고 이름을 바꿨다. 성주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쇠퇴했다가 17세기 말 이후 폐사했다고 한다.

성주사지에 가기 전 입구에 있는 천년역사관(문의=041-933-6558)에 들렀다. 이곳 홍보관은 무염 스토리와 성주사 가람 변천, 성주사 발굴 현장과 AR 체험, 구산선문 형성, 15m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빛으로 깨어나는 성주사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주사를 지켜라와 누가 살고 있을까, 소리를 먹는 고래 등으로 짜인 어린이체험실도 있다.

천년역사관을 나와 성주사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주사지에는 국보 제8호인 대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와 보물로 지정된 1개의 오층석탑, 3개의 삼층석탑 등이 있다. 옛 영화를 찾기 힘든 고즈넉한 절터와 어쩌면 외롭게 어떻게 보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탑은 필자를 역사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 답사 기억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했다. 부질없는 옛 기억에서 간신히 빠져나오자 통일신라 말기의 양식이 담긴 우아하고 경쾌한 석탑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배움이 부족해 백월보광탑비에 해서체로 새겨진 5120여자에 달하는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읽을 수 없음은 참 아쉬웠다.

보령 해저터널 홍보관에서 볼 수 있는 1대 45 크기의 터널 단면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보령 해저터널 홍보관에서 볼 수 있는 1대 45 크기의 터널 단면 모형. 사진=노진호 기자

◆80만명, 4000일, 6927m… 색다른 기분의 해저터널

추억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 번째 충남 답사지 보령의 마지막 코스로 찾은 건 ‘해저터널’이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보령 해저터널의 길이는 6927m이며, 그중 해저 구간은 5209m다. 이곳은 2012년 12월 첫 삽을 떠 2021년 12월 완공됐으며, 해수면 아래 80m 터널을 만들기 위해 연 80만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또 바다 양쪽에서 시작한 터널 공사 관통 구간이 만난 건 8년 만이다. 해저터널을 달리기 전 들른 홍보관은 단출했지만, 지역 특산물 등의 쇼핑도 할 수 있으니 들러도 좋다.

해저터널을 달린 건 5~6분 정도였다. 마치 아쿠아리움처럼 바닷속을 관람하며 달리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해저 80m 지점 등의 이정표를 보며 확실히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찾은 보령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길’이었다. 코스를 이동하며 만난 아늑한 시골길, 공원에서 거닌 작명 센스 빛나는 산책길,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바닷속 도로 등 보령의 길은 그리고 곳곳의 명소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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