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죠”
“빵집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죠”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09.08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영자 작사가, ‘여고시절’, ‘행복할 수 있다면’ 등 히트곡 다수
2012년 고향 예산으로… 예산군, 예당호에 ‘노래비’ 건립 추진
한국화 화가로도 활동… “팔순쯤에 멋들어진 개인전 열고 싶어”
주영자 작사가가 ‘여고시절’ 가사가 새겨진 지인의 선물을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주영자 작사가가 ‘여고시절’ 가사가 새겨진 지인의 선물을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 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지나간 여고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어요~♩♪

1972년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고시절(이수미)’이란 곡의 가사다. 추억 가득한 이 노랫말을 쓴 주영자 작사가가 예산군 응봉면에 살고 있다. 예산군은 예당호에 노래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주영자 작사가는 “‘여고시절’은 스무 살쯤 쓴 곡”이라며 “난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다. 그중 유독 인기 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면 참 재밌었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이 곡은 그 친구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것”이라고 회고했다.

주영자 작사가는 1952년 예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상경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방학이면 예산에 왔다. 졸업하곤 대한체육회관 건물에 있던 헨켈 한국지사 비서실에 들어갔다. 한 7~8년쯤 다닌 것 같다”며 “1976년에 결혼해 1남 2녀를 낳았다. 큰딸도 음악을 한다. 단테라는 예명으로 작사·작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10년쯤 전에 먼저 하늘로 떠났다”고 덧붙였다.

주영자 작사가는 ‘그대 변치 않는다면(방주연)’, ‘친구(이용복)’, ‘행복할 수 있다면(김상희)’, ‘여고동창생(이미자)’, ‘처음 본 그대(나훈아)’, ‘느낌(최유나)’ 등 다수의 히트곡을 썼다.

그는 “‘여고시절’이 히트하며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음악 하는 분들이 내 가사를 받으러 대한체육회 건물로 많이들 찾아왔다”며 “사실 난 악보를 잘 볼지 몰랐다. 그래서 회사 근처 빵집 등에 가 작곡가들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들려줬다. 그러면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다. ‘행복할 수 있다면’과 ‘여고동창생’ 등이 그렇게 나온 곡”이라고 말했다.

주영자 작사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행복할 수 있다면’이다. 김상희가 부른 이 노래는 1975년 발표돼 크게 히트했다”며 “뭐라고 이유를 설명하긴 힘든데 그냥 가장 마음에 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 작사가는 휴대전화로 ‘행복할 수 있다면’을 들려줬고, 한동안 그 옛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주영자 작사가는 “어떤 곡은 어느 가수를 미리 정해 맞춤형으로 쓰기도 하고, 어떤 곡은 가사를 먼저 쓰고 친한 작곡가에게 곡을 부탁하기도 한다”며 “70년대에는 작사비를 100만원쯤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쓴 게 100여곡쯤 되는데 지금 열심히 찾고 있다. 20곡쯤 찾았는데 현레코드에서 CD로 만들어 선물해줬다”고 덧붙였다.

주영자 작사가는 화가이기도 하며,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 집 한편엔 작은 작업실이 있고, 마당에는 예쁘게 꾸민 항아리가 가득하다. 그는 “글을 쓰다 보니 그림에도 관심이 생겼고, 마흔다섯인가에 수원전문대에 들어가 한국화를 배웠다. 그림은 소나무나 바위를 주로 그린다”며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았다. 고향이긴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돌아오니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주영자 작사가가 응봉면에 집을 짓고 고향에 돌아온 건 2012년의 일이다. 그는 “마당에 있는 하우스에 냉장고도 놓고 먹거리도 채웠다. 이웃들을 위한 사랑방”이라고 자랑했다.

주영자 작사가는 지금도 꾸준히 가사를 쓴다. 그는 “술 한 잔 마시거나 문득 글귀가 떠오르면 쓰는 편이다. 예전과 똑같다. 단지 수첩에서 휴대전화로 바뀌었을 뿐 마음은 그대로”라며 “예산에 대한 노래도 써보고 싶고, 이 지역 작곡가나 가수에게 가사를 주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도 열심히 그려 팔순쯤 멋들어진 개인전도 열 생각”이라고 더했다.

주영자 작사가는 “노래란 건 발표 당시 히트를 안 해도 세월이 흐른 후 알려지기도 한다. 좋은 노래란 유행이 없다. 언젠가는 사랑받는다”며 “내 가사도 그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황혼에 설레는 마음도 아름다운 사랑…’ 주영자 작사가가 조심스레 보여준 최근 쓴 가사 중 일부다. ‘여고시절’은 친구의 이야기였지만, 이 곡은 본인의 마음인 것 같았다. 글로, 그림으로 설레는 마음 말이다. 그의 노래비는 겨울이 보일 때쯤 세워질 예정이다. 눈이 오고, 예당호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살펴주길 부탁드린다.

주영자 작사가는 2012년 응봉면에 집을 짓고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왔다. 그를 만난 건 비가 부슬거리던 지난달 30일이었다. 사진=노진호 기자
주영자 작사가는 2012년 응봉면에 집을 짓고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왔다. 그를 만난 건 비가 부슬거리던 지난달 30일이었다. 사진=노진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