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6 –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
[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6 –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1.0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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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병창 청운대학교 교수

혀 짧은 스승이 제자에게 ‘風’자를 가르친다. “바담 풍.” 제자가 스승이 가르친 그대로 따라 읽는다. “바담 풍.” 스승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친다. “아니, 아니. 바담 풍 아니고 바담 풍!” 스승은 비록 혀가 짧아 “바담 풍” 하더라도 제자는 정확하게 “바람 풍” 해주길 바라는 스승의 절절한 ‘청출어람(靑出於藍)’ 염원이 담긴 일화이다. 청출어람은 흔히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사전의 뜻풀이도 이와 유사하다. 다음은 사전에 수록된 ‘청출어람’ 뜻풀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사상을 집록한 ‘순자’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말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뤘지만 물보다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청출어람’이 나왔으며, ‘출람(出藍)’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원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고 해야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가 갖춰지지만, 일반적으로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쓴다. 또 이러한 재주 있는 사람을 ‘출람지재(出藍之才)’라고 한다.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순자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북조(北朝)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璠)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했다. 그는 학문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됐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또 훌륭한 제자를 뒀다는 뜻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칭찬했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는 ‘출람지재’, ‘출람지예(出藍之譽)’ 등과 함께 ‘청출어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 두산백과 두피디아

언어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사회적 약속[約定俗成]’이다. 즉 특정 어휘의 발음과 뜻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동의하고 약속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대상을 가리키는 발음은 한국 사람들의 약속이고, 중국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화(花·hua)’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flower[ˈflaʊə(r)]’라고 약속했다. 이렇듯 ‘청출어람’의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라는 뜻도 ‘사회적 약속’이니 이런 의미를 인정하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청출어람’의 본래 의미는 지금 통용되는 의미와 다르다는 것이다.

‘청출어람’ 출처인 순자 권학편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君子曰(군자왈)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靑取之於藍(청취지어람), 而靑於藍(이청어람), 冰水爲之(빙수위지), 而寒於水(이한어수). 木直中繩(목직중승), 輮以爲輪(유이위륜), 其曲中規(기곡중규), 雖有槁暴(수유고포), 不復挺者(부복정자), 輮使之然也(유사지연야). 故木受繩則直(고목수승즉직), 金就礪則利(금취려즉리),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군자박학이일삼생호기), 則智明而行無過矣(즉지명이항무과의).”

이 문장은 권학편의 첫 단락으로 의미를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군자가 이르기를, ‘배우기(학문)를 멈추면 안 된다.’라고 했다. 푸른 물감은 쪽(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에서 취하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되지만 물보다 차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에 맞더라도 구부려서 바퀴로 만들면 그 굽은 것이 그림쇠(원을 그리는 제구)에 들어맞는다. 비록 그 나무를 뙤약볕에 말려도 다시 곧아지지 않는 것은 구부린 것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아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롭게 되며,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세 번을 스스로 돌아보면 지혜가 밝아지고 행동에 잘못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글은 제목 그대로 배움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열심히 배우면 스승보다 나아진다’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푸른 물감’과 ‘쪽’, ‘얼음’과 ‘물’, ‘곧은 나무’와 ‘굽은 나무(바퀴)’, ‘먹줄을 받은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 ‘숫돌에 갈아 날카로워진 쇠’와 ‘그렇지 않은 쇠’는 서로 다른 별개의 사물이 아니고 본래 하나이다. 즉 ‘배우기(교육) 전의 사람’과 ‘배운 후의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정확한 의미는 ‘사람이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학문을 닦는다면 전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어떤 불리한 환경에서도(뙤약볕에 말려도) 배우기 전의 사람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청출어람’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배움을 쉬지 않으면 이전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로 풀이할 수 있다. 곧 열심히 배우고 새로워져 마치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발전한다는 의미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이나 ‘괄목상대(刮目相對·눈을 비비며 다시 대한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기왕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 굳이 이를 따져 고치려 들거나 트집 잡을 필요는 없다. 지금의 의미가 원래의 의미보다 더 널리 쓰이고, 세상의 제자들이 스승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독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니 이야말로 ‘청출어람’ 아닌가!

※괄목상대= 중국 삼국시대 동오(東吳)에서 과거에 비해 학식이 매우 해박해진 여몽(呂蒙)의 모습에 노숙(魯肅)이 크게 놀라자 여몽이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합니다.(士別三日,即更刮目相對)”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출처=晉·陳壽, ‘三國志·吳志·呂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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