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7 – ‘설’의 기원
[칼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7 – ‘설’의 기원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2.26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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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병창 청운대학교 교수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주(周) 왕조(BC 1121~771년) 때부터 일 년에 한 번 풍년을 축원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원래 이 의식이 행해지는 시기는 음력 11월이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신년 풍속의 기원으로 여기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가 새로 등극하면 천자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역법(曆法)을 새로 제정하는 전통이 있었다. 따라서 역대 원단(元旦)의 구체적인 월, 일이 모두 달랐다. 이후 한(漢) 무제(BC 140~87년)에 이르러 역법을 정비해 통일시키게 되는데 오늘날 중국에서 사용하는 역법은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수정·보완돼 온 것이지만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 원단은 바로 이 한 무제의 역법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아(爾雅)’라는 중국 고대 자서에는 ‘년(年)’에 대해 “하나라 때는 ‘세’라고 했고, 상나라 때는 ‘년’이라고 했다(夏曰歲, 商曰年)”는 주해를 달고 있다. 은상(殷商) 대부터 달이 한번 차고 기우는 것을 월(月), 초하루를 삭(朔), 보름을 망(望)이라 했고, 한 해의 시작을 정월(正月) 삭일(朔日) 자시(子夜)라 해 바로 이때를 원단(元旦) 혹은 원일(元日)이라 불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역사상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로 추정되는 하(夏)대에는 춘절(春節·오늘날 중국의 설)이 지금의 2월에 해당하는 때였는데, 한 무제 태초 원년에 사마천(사기의 저자)의 건의에 따라 이른바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고 춘절을 맹춘 정월로 정했다. 일 년의 첫날을 가리키는 음력 원단은 원일(元日), 원삭(元朔), 원정(元正), 원신(元辰), 정단(正旦), 신정(新正), 신춘(新春), 신년(新年) 등 여러 다른 이름들로 불리기도 한다.

설은 중국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다. 집과 부모를 떠나있던 자녀들도 이때에는 불원천리하고 부모 형제가 사는 고향으로 모두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 하루 전날을 바로 ‘단원야(團圓夜·가족이 모이는 밤)’라 부르며 이날 밤은 온 가족이 둥글게 모여 앉아 만두를 빚는다. 만두를 빚으려면 먼저 밀가루를 반죽해야 하는데 이 ‘반죽하다’라는 의미의 화(和)자는 중국어로 합(合)과 발음이 같다. 또 만두 즉 교자(餃子)의 교(餃)자는 마찬가지로 교(交)자와 같은 발음이다. 이 合과 交는 모두 서로 모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만두를 빚는다는 것은 곧 ‘함께 모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중국의 설 분위기는 약 한 달이나 지속되는데 정월 초하루 이전에는 부엌 신(灶神)과 조상에 대한 제사 의식이, 명절날에는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거나 친한 친구 혹은 친지들 간에 서로의 집을 방문해 세배를 주고받는 등의 행사가 있고, 반 달 후에는 대보름(元宵節)이 있어 이때는 마을 곳곳에 형형색색의 등이 내 걸리고 거리는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붐벼서 최대의 성황을 이루게 된다. 이 대보름이 지나면 비로소 설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국에서는 설을 ‘춘지에’라고 부르는데, 민간에서는 또 ‘꿔니엔(過年)’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이 두 명칭은 기원이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니엔(年)’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민간에 두 가지 설(說)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먼 옛날 중국에는 머리가 길고 뿔이 있으며 포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니엔이라는 괴수가 있었다. 이 니엔은 평소에는 바다 깊은 곳에 살다가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뭍으로 올라와 가축을 먹어 치우고 인명을 해쳤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해마다 섣달그믐이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니엔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섣달그믐날 도화촌 마을 사람들이 막 피난 준비로 한창이던 때, 어디선가 한 손엔 지팡이를 쥐고 어깨에 포대 자루 하나를 짊어진 걸식 노인이 이 마을로 들어왔다. 하지만 문단속하랴, 짐 챙기랴, 혹은 소나 양을 이리저리 끄느라 소란스럽고 바쁘기만 했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걸식 노인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로지 마을 동쪽 끝에 살고 있던 한 노파만이 이 노인에게 음식을 건네주며 빨리 니엔을 피해 산으로 숨을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할머니, 만일 나를 이 집에 하루만 머물 수 있게 해준다면 내 반드시 니엔을 몰아내 주겠소라고 말했다. 노파가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노인은 백발이 성성한 구릿빛 얼굴에 안광이 형형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노파가 재삼 산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거지 노인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노파는 결국 그를 남겨둔 채 홀로 집을 버리고 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밤이 되자 니엔이 드디어 마을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마을의 분위기가 뭔가 예년과는 달랐다. 마을 끝 노파의 집 대문에는 붉은 종이가 나붙어 있었고 집안에는 환한 불빛이 온 집안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이를 본 니엔은 온몸을 뒤틀어 대며 괴성을 토해냈다. 니엔은 성난 눈으로 노파의 집을 한번 흘깃 노려보고는 그쪽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려 갔다. 막 대문 앞에 다다를 즈음, 집안에서 갑자기 ‘파파파팍’하는 폭발음이 터져 나왔고 니엔은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원래 니엔은 붉은색과 불빛 그리고 폭발음을 가장 무서워했다. 이때 노파의 집 대문이 활짝 열리며 붉은색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파안대소하며 서서히 걸어 나왔다. 이를 본 니엔은 대경실색해 다급히 뒷걸음쳐 도망쳤다.

다음날(바로 이날이 후에 정월 초하루가 되는 날이다), 피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마을의 모습에 모두 놀라고 말았다. 노파는 곧 걸식 노인을 떠올렸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해 줬다. 노파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노파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노파의 집 대문에는 붉은색의 종이가 붙어 있고 정원에는 아직 다 타지 않은 대나무 한 더미가 연발 ‘파팍’하는 폭발음을 내고 있었으며 집 안에서는 촛불 몇 개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구세주의 왕림을 경하하기 위해 서둘러 새 옷에 새 모자를 쓰고 거리로 몰려나와 가까운 친구의 집들을 찾아다니며 서로 축하하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얘기는 곧 주변의 이웃 마을들에도 급속히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이제 모두 니엔을 몰아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로부터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집집마다 붉은 대련(對聯·한 쌍의 對句의 글귀를 붉은 종이나 천에 쓰거나 나무 혹은 기둥 따위에 새긴 것. 설날에 쓰이는 것을 특히 春聯이라고 함)을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며 촛불을 밝혀 온 집 안을 환히 밝힌 채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됐다. 이후 이러한 풍속은 해가 갈수록 더 널리 민간에 퍼졌으며 오늘날 가장 성대한 명절로 자리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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