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부끄러운, 유니폼…
[기자일기] 부끄러운, 유니폼…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3.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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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아산FC의 2024시즌 유니폼. 구단 홈페이지 캡처
충남아산FC의 2024시즌 유니폼. 구단 홈페이지 캡처

지난 9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충남아산FC의 2024 K리그2 홈 개막전이 열렸다. 상대는 부천FC 1995였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무려 1만 22명의 관중이 운집한 이날 경기에서 화제가 된 건 승패도 플레이도 하물며 판정도 아닌 ‘유니폼’이었다.

이날 충남아산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올 시즌 충남아산의 홈 유니폼은 파란색, 원정 유니폼은 흰색, 세 번째가 바로 빨간색이다. 시즌을 여는 홈 개막전에서 첫 번째가 아닌 세 번째를 골랐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진 않다.

이날 경기장에는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쓰는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박경귀 아산시장이 방문했다. 총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라 경기장을 빨갛게 물들인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빨간색 유니폼을 만들자는 의견이 ‘위’에서부터 내려왔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구단은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성웅이순신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장군복의 색상을 가져왔다고 밝힌 바 있지만 말이다.

이날 경기 시작 전 김 지사와 박 시장은 필드에 등장해 마이크를 잡았다. 관중석에선 야유가 들렸고, 항의 걸개가 내걸렸다. 이를 본 높으신 분이 ‘이렇게 하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들린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 날 말이다.

이날 문제는 또 있었다. 경기장 밖은 각 정당의 형형색색 옷을 입은 총선 예비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이 몰려 와 유세전을 벌였다. 프로축구연맹은 경기장 내부는 물론 매표소를 비롯해 관중의 동선이 이어지는 외부까지 선거운동을 금지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선수단을 위한 주차장을 VIP들에게 내줘 선수들은 애를 먹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갓길에 주차했다가 차를 빼달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 나온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충남도는 지난 9일 ‘김태흠 지사, 충남아산FC 1부리그 승격 기원’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명예구단주인 김 지사가 경기장을 찾았고, 구단 지원금을 증액한다는 내용이다. 시·도민구단의 특성상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심 자체가 좋은 일이라 여겨 내포뉴스 홈페이지에도 게재했다. 도에서 보내온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면서도 미처 ‘빨간색 유니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혹시 그릇된 의도로 경기장에 정치색을 입힌 분이 있다면, 그분 역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바로잡아주길 바란다.

지난 9일 열린 충남아산FC 홈 개막전 행사 중 김태흠 지사 등의 시축 모습. 충남도 제공
지난 9일 열린 충남아산FC 홈 개막전 행사 중 김태흠 지사 등의 시축 모습. 충남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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