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고, 품어주던 ‘배 바위’ 어쩌나
지켜주고, 품어주던 ‘배 바위’ 어쩌나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4.03.18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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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구항면 ‘배 바위’ 무인텔 조성으로 훼손 위기
마을주민들 “홍성군, 문화재 지정 안 해 위기 자초”
산 소유주 “최대한 보존, 마을회관으로 옮길 수도…”
지난 11일 만난 심재능 전 금당초 교장이 배 바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주 기자
지난 11일 만난 심재능 전 금당초 교장이 배 바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주 기자

홍성군 구항면 마온월드 뒷산에서 오랜 세월 지역민과 함께한 ‘배 바위’가 위기에 처했다.

배를 묶어 두던 바위라고 해 ‘배 바위’라 불린 이 바위는 홍성군의 무관심으로 문화재 지정이 안 돼 무인텔 조성으로 인해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배 바위가 있는 곳은 구항면 마온리 산 15-2번지로, 마온현대오일뱅크(이후 주유소) 뒷산에 있다.

홍성문화원이 지난해 출간한 ‘홍성 바위 이야기(김정헌 作)’에 따르면 배 바위는 꽃조개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배를 묶어두던 바위로, 높이는 약 3m, 둘레는 성인 남자 3명이 안을 정도다.

마온리 주민들에 따르면 홍성의 한 노래방 업주가 배 바위가 있는 임야를 매입해 개발 허가를 냈다. 홍성군청 허가건축과 건축팀은 지난해 11월 24일 이곳의 개발을 허가했다. 이정연 주무관은 “주민설명회 등의 법적인 절차는 안 해도 된다”며 “지정된 문화재가 없어서 허가가 나갔다. 현장 조사는 건축사가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마온리 인근에 사는 심재능 전 금당초 교장은 “배 바위는 당연히 문화재 지정이 됐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던 것”이라며 “전설적인 바위가 훼손되게 됐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60년 전 중학교 다닐 때 그쪽 길을 걸어 다녔다. 그때는 논이었지만, 배가 드나들던 바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주민 A씨는 “오래전 해당 산지를 매입하려고 알아보니 군에서는 ‘농업 관련 시설 외에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인텔을 어떻게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당시에 ‘농업 계간 허가를 낸 후 5년이 지나야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정이 생략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또 “손쓸 새도 없이 벌채돼 버렸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주민 B씨는 “개발지 바로 옆에 청송아파트가 있고, 길 건너에는 무지개개나리 아파트 등 주택지구인데 무인텔 개발 허가가 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전설의 바위를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상진 배 바위 보존위원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나무하러 가서 막걸리를 부어 올리던 바위였다”며 “산 주인은 ‘배 바위를 보존해 주겠다. 표지석도 해주겠다’고 말했다. 일단 그 약속을 믿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배 바위가 있는 산은 벌목이 돼 흉한 모습이다. 지난 11일 현장을 찾았을 때는 고양이 2~3마리가 벌거숭이 된 산에서 움츠리고 있었다. 배 바위 주변은 빙 둘러 깊게 파였고, 벌목돼 남아있는 나무뿌리가 바위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심 교장은 “나무뿌리를 캐내면 바위가 온전하게 서 있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 소유주는 내포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명확한 사유지다. 바위도 문화재가 아닌 내 재산”이라며 “최대한 보존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건물 짓는데 닿거나 하면 옆으로 옮겨 놓거나 동네 사람들이 원하면 마을회관에 갖다 놓겠다”고 말했다.

무인텔 조성을 위한 벌목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배 바위. 사진=이건주 기자
무인텔 조성을 위한 벌목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배 바위. 사진=이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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