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 현장 전문성과 정치력으로 지역발전 가속화
김학민, 현장 전문성과 정치력으로 지역발전 가속화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1.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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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홍성예산지역위원장 직무대행, 연구실 벗어나 새로운 길 도전 
내포뉴스 특별취재반이 21일 충남도청을 방문, 경제특보실에서 김학민 위원장 직무대행을 만났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 위원장 대행.
내포뉴스 특별취재반이 21일 충남도청을 방문, 경제특보실에서 김학민 위원장 직무대행을 만났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 위원장 대행.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서 지난 4일 김학민 전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를 홍성예산지역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김 위원장 대행은 예산군 신례원에서 태어나 순천향대학교 영문과 3학년 때인 1987년 도미, 텍사스대학교 댈러스캠퍼스 정부ㆍ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순천향대 산학협력부총장,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충청남도 중소기업연수원장, 충남도 정책특별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충남도 경제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포뉴스에서 21일 오후 충남도청 본관 5층에 있는 그의 방을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홍성예산지역위원장 직무대행 임명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당에서 위원장이 아니고 왜 직무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는지 궁금합니다. 
“당규상 지역위원회가 사고지역인 경우 당대표가 최고위원회를 거쳐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을 임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이 임명되면 지역 운영위원회에서 도·군의원을 포함해 상무위원을 선임합니다. 그 후 지역의 당직자들 중심으로 100여명의 지역대의원들이 모여 지역위원장 직무대행과 상무위원회를 인준합니다. 예산‧홍성은 사고지역이어서 직무대행을 임명한 것입니다. 다음 주에 상무위원들을 선임한 후 3개월 이내 지역대의원회에서 상무위원회와 함께 지역위원장을 인준하게 됩니다. 직무대행으로서 큰 문제가 없습니다.” 

-홍성‧예산은 보수성향이 강해 민주당에게는 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 신인으로서 우선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로서 내년 4월 총선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저는 그 동안 교수로서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도 정책을 만들면서 홍성‧예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마련했습니다. 아직 전문적인 정책을 유권자에게 제시할 단계가 아니어서 인지도를 당장 높이기는 어렵지만 이 지역 출신이어서 저에게 기대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홍보를 해주고 있습니다. 당에서는 입당 환영식을 열어 주시면서 아직 민주당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홍성‧예산지역을 위한 맞춤형 인물로 평가하고 다양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충남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함께 만들어 온 정책들은 12월 12일 이후에 발표하게 될 것입니다.”

김학민 더불어민주당 홍성예산지역위원장 대행은 순천향대가 배출한 1호 유학생에, 1호 박사학위 취득자, 1호 모교 교수 임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학민 더불어민주당 홍성예산지역위원장 대행은 순천향대가 배출한 1호 미국유학생에, 1호 박사학위 취득자, 1호 모교 교수 임용이라는 기록을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행정학자로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보다 도의 기관장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개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교수로서 안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행정학은 정부의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그 중에서도 저는 정치경제학을 다루는 교수입니다. 대학에서 재정학, 재무학, 사회과학연구방법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저는 지역혁신정책을 만들어 1997년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테크노파크를 기획했습니다. 당시 IMF를 맞아 지역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해외로 수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후 지난 20여 년간 현장중심의 학문을 하면서 중소기업을 연구하고 교육하며 기업의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제가 대학에만 머물러 있지 못하는 이유는 학자로서 전문가로서 정책을 만들 수도 있지만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포신도시는 10만 도시가 요원합니다. 홍성과 예산은 원도심의 발전이 멈췄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장에 대한 전문성과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충남중소기업연수원장과 충남테크노파크 원장을 두 번 지낸 경험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교수로서 남은 정년 6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어 부득이 대학교수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시절 기여한 업적이 있다면.
“1996년 정부가 테크노파크를 기획하고 1997년 선정할 무렵 충남에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충남에는 17개 대학이 있고 미래산업을 육성할 대학교수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최초로 테크노파크가 선정될 수 있습니다. 그때 30대 후반이었던 저가 총괄책임자를 맡아 마스터 플랜을 완성했습니다. 그 후 부지사 출신 원장을 모셔서 운영을 해왔으나 방향을 잡지 못해 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초기 7년 가까이 4명의 원장이 중도하차하게 되자 충남도로부터 충남테크노파크 마스터 플랜을 짰던 김 교수가 해보라고 저에게 공모를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원장에 공모해 중책을 맡게 되었으나 주변에서는 공직자들 속에 들어가 제대로 할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심이 통한다고 믿었습니다. 정말 성공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제가 움직이면 공직자들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초기 목표를 설정한 결과 기업들이 다시 찾는 테크노파크가 됐습니다. 제가 3년을 하고 나올 때는 4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기업 마케팅이 상당히 성과를 내면서 제가 취임한 후 7배 이상 기업들이 매출을 올렸습니다. 원래 우리 지역에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이 없었으나 테크노파크를 통해 성공하게 되었고, 엔젤펀드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매출 5천억 기업도 나오고 포스닥에 상장하는 기업도 나왔습니다. 충남에 새로운 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기업육성 체계가 갖춰지면서 아산과 천안이 발전했습니다.”

김학민 위원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내포뉴스 허성수 취재국장.
김학민 위원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내포뉴스 허성수 취재국장. 김 위원장 대행은 일이십대 시절 등산을 통해 도전정신을 길렀다고 밝혔다.

-특별히 지역구 발전을 위한 핵심 공약이 있다면.
“제가 충남도지사 인수위원회에서 경제산업분과위원장을 맡았을 때 양승조 지사의 경제틀을 수립했습니다. 충남경제발전전략위원회 민간부문 위원장으로서 저는 충남경제발전전략 100대과제를 선정했습니다. 그것은 충남 전체를 위한 전략과 내포를 중심으로 충남이 발전할 수 있는 전략으로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국회의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전문가로서 100대과제를 선정했습니다. 평소 갖고 있던 홍성‧예산의 경제발전전략이었습니다. 내포신도시는 인구 10만의 혁신도시가 되어서 홍성‧예산으로 흘러가게 하는 정책입니다, 농업지역인 예산은 인구감소 지역으로 예당저수지 주변을 슬로시티로 만들어 도심지 은퇴자들이 귀촌할 수 있는 명품마을로 조성해야 합니다. 쾌적하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홍성은 축산이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지만 악취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축산산업단지를 천수만 간척지역에 선정해서 첨단축산산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화 시설을 지원해서 동물 사육 판매뿐만 아니라 가공도 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4차산업과 연계한 축산단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포는 살기 좋은 조화로운 도시로 충남의 실질적인 중심도시입니다. 충남과 대한민국의 근간으로 만들겠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가혁신 클로스터입니다. 예산 오가지역을 중심으로 친환경적인 국가산업클로스터를 만들고 예산읍에 거주할 수 있는 정주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홍성은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산업이 국가 프로젝트로서 장기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저궤도로 인공위성을 운영해 범죄예방과 농업을 위해 사용합니다. 홍성 서부면 바닷가에는 국공유지가 있어서 소형 인공위성산업단지를 만들기에 적합해 축산업 이후 홍성의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순천향대학교 영문과 3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나셨던데 학부시절 어떤 환경에서 도전하게 되셨습니까?
“저는 촌놈입니다. 항상 언더독(underdog, 게임 등에서 승산이 적은 사람, 약한 개, 패배자)이었고 마이너리티였습니다. 저는 창소리 출신으로서 초등학교가 있는 신례원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예산중학교에 가니 읍내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천안고등학교에 가니까 저는 예산서 온 촌놈이었습니다. 저는 한때 산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암벽등반을 좋아해 남들이 오르지 못한 산을 등정하며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1980년대에 집과 가까운 순천향대 영문과에서 공부를 하다가 유학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대부분 유학생들은 SKY 출신으로 저를 부잣집 아들이 놀러 온 줄로 여겼습니다. 그때 저는 집에서 마련해준 450만원을 유학비로 갖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학기부터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청소로 7~8달러를 받았고, 좀 더 어려운 일은 10달러도 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밤에 건물 하나 전체 화장실을 청소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학생들이 저를 돈 벌러 온 불법체류자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받고 더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한 학기만 도와 달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없는 살림이지만 1년 동안 해보라고 하시면서 도와주셨습니다, 다행히 저는 대학에서 수석졸업을 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과정을 짧은 기간에 끝냈습니다. 그제서야 친구들이 쟤는 공부하러 왔구나 하고 인정을 하더군요. 저는 항상 도전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인정을 안 해줘도 결과로써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순천향대 출신 첫 번째 유학생으로서 첫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고, 첫 번째 교수가 되었습니다.”

김학민 전 순천향대 교수는 충남테크노파크 원장과 충남중소기업연수원장, 충남도지사 정캑특보 등을 지내며 쌓은 현장경력과 전문성을 높이 사 내포신도시를 중심으로 홍성예산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김학민 전 순천향대 교수는 충남테크노파크 원장과 충남중소기업연수원장, 충남도지사 정캑특보 등을 지내며 쌓은 현장경력과 전문성을 살려 내포신도시를 중심으로 홍성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요즘 지방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한 데다 취업난까지 겹쳐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하신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지만 전환기 경제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금방 나오지 않습니다. 제조업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저는 베트남과 테크노파크 일로 관계를 갖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 기업들이 많이 진출했습니다, 임금도 국내 못지않게 받을 수 있어서 우리 학생들을 보냈습니다. 베트남에 취업시켜 보낸 어떤 친구는 여자친구와 결혼도 해 둘이서 연 1억을 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레드오션보다는 블루오션을 찾으라고 합니다. 특히 해외에 눈을 돌려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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