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건 언어… 아이들 더 많이 도와줘야”
“가장 중요한 건 언어… 아이들 더 많이 도와줘야”
  • 노진호
  • 승인 2020.09.28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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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려인동포 돕는 김갈리나氏
2000년 결혼이민… 2011~2019년 홍성다문화가족지원센터서 일해
러시아어 통역활동 등 계속… “말 못하면 학교 적응은 불가능한 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에서 연 고려인동포 관련 포럼에 참여했던 김갈리나 씨를 홍성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에서 연 고려인동포 관련 포럼에 참여했던 김갈리나 씨를 홍성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는 지역 노동사회단체들과 함께 도내 고려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달부터 연말까지 실태조사를 벌인 후 이를 바탕으로 고려인들의 노동권 실현을 위한 제도적 방안 및 실천과제를 수립할 계획이다.

충청남도노동권인센터는 고려인동포들의 노동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으로 지난 8일 ‘제5차 다른 내:일을 여는 노동포럼’을 열고 현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홍성에 살고 있는 고려인으로, 수년간 지역 고려인들을 위한 일을 해온 김갈리나(47) 씨가 함께해 의미가 더 컸다. 그는 특히 이주민 자년들의 열악한 교육현실을 꼬집고 지원책 마련을 강조했다.

내포뉴스는 이달 중순쯤 홍성의 한 커피숍에서 김갈리나 씨를 다시 만나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온 갈리나 씨는 2000년 결혼이민으로 대한민국 홍성에 왔다. 현재 가족은 남편과 아들 하나라고 한다. 그는 “남편이 홍성사람이라 이곳에서 살게 됐다”며 “그 전에 한국에 와본 것은 1996년 여행으로 왔던 게 전부”라고 말했다.

갈리나 씨는 “지난번 포럼은 주제(이주노동자 노동권 실태와 지역사회의 과제&지역 고려인 이주노동자 노동권 실태조사 계획)를 듣고 관심이 생겨 참여하게 됐다”며 “포럼 후 센터가 배포한 자료에는 내가 다년간 통역활동을 해온 것으로 돼 있지만, 전문적이거나 특별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갈리나 씨는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홍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내 모어(母語)는 러시아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어를 통해 도울 일이 생기게 됐다”며 “난 교육 등 자녀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 그런 것 위주로 돕게 됐고, 경찰서와 병원 등 지역 기관·단체의 러시아어 통역 요청이 있을 때도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갈리나 씨는 “사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어를 쓸 일은 거의 없었는데 한 3~4년 전부터 고려인 이주가 많아졌다”며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됐는데 구항면 마온리에도 40명쯤 살고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의 고려인동포는 400~500명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인들이 많이 다니는 공장이 예산 삽교에 있는데 그 회사가 내포신도시의 한 오피스텔을 기숙사처럼 쓰고 있다”며 “내포에 왜 러시아 사람이 많을까 하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러시아인이 아니라 고려인동포일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그동안 고려인동포를 위해 한 일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갈리나 씨는 “지난번 포럼의 주제였던 노동 문제로는 급여 관련 피해가 많았다. 월급이나 퇴직금을 못 받는 경우 말이다”라며 “그런 경우에는 중간에서 통역만 하고 홍성이주민센터 등과 연결해 드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갈리나 씨는 한 가정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내포의 방 두 개짜리 집에 사는 한 가정을 알게 됐는데 식구가 여덟(자녀 6명) 명이나 됐다. 그저 힘들다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그즈음 홍성경찰서에서 연 토론회에 참여하게 돼 그 일을 말했는데 경찰서에서 꽤 큰돈을 마련해 주셔서 더 큰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고 말한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갈리나 씨가 ‘홍성의 카자흐스탄댁’이 된 2000년쯤에는 결혼이민자 몇몇을 빼고는 지역에서 고려인동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처음 와서 가장 힘든 건 언어다. 그때는 배울 수 있는 곳도 마땅히 없었다”며 “내가 알기로는 2007년부터 고려인동포들에 대한 취업입국이 허락됐다. 초창기에는 안산이나 경주, 부산, 김해 등 산업단지가 발전한 지역 위주였고, 거의 아빠들만 혼자 한국에 왔다. 이후 가족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며 한국에 사는 고려인동포가 늘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홍성에는 2016년쯤부터 들어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족 단위의 고려인동포 이민이 늘며 교육 문제로 점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갈리나 씨 역시 지난 8일 열린 포럼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어다. 아이들은 말 한마디 못하는 상태에서 학교나 유치원에 들어가 적응하고, 공부하고, 친구까지 사귀어야 하는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언어인데 그게 안 되니 적응을 못하게 되고, 가끔은 이런저런 탈도 난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들에게 가끔 상담전화가 오곤 한다. 중3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한국의 고입제도도 잘 모르고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하소연 한다”며 “3년 전쯤 고입과 관련해 어느 학교에 갔는데 ‘대한민국은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라, 고교는 학칙에 따라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그 아이의 입학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학부모는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어렵게 아이를 고교에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고려인동포의 아이들은 가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갈리나 씨는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이다. 초등학교 다누리교실, 중학교의 다문화예비학교 등이 생겼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나도 올해는 홍북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나가 아이들 3명의 교육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많이 좋아졌고, 감사한 일’이라고는 했지만, 갈리나 씨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중학교의 다문화예비학교의 경우 입학 후 3개월 동안 적응을 돕는 초기 교육을 한다. 하지만 3개월은 너무 짧다”며 “초등과 중등의 차이는 크다. 말 한마디 못하는 아이가 3개월 교육으로 적응하고 공부를 따라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 자녀들도 고학력이 될수록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사춘기를 겪으며 더 고생하는 일이 많은데 고려인동포의 아이들은 언어 문제까지 더해지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어려운 공부인데 말도 안 통하면 더 재미없어지고 더 멀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갈리나 씨는 또 “다누리교실이나 다문화예비학교 모두 학교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다. 뭔가 정해진 규정이 없는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원격수업이 늘면서 고려인동포 학부모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아예 1년을 포기했다는 분도 계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갈리나 씨는 고려인동포들에게 당부의 말도 건넸다. 그는 “고려인동포들의 수가 늘면서 너무 그들끼리만 뭉친다. 그건 자녀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더 안 배우게 된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알지만, 더 적극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동기도 있어야 한다. 소통과 적응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리나 씨는 사실 지난해 연말 홍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그만두고 1년쯤 푹 쉴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홍북초의 요청을 받고 봄부터 학교로 가게 됐다.

그는 “쉬고도 쉽지만 아이들을 위한 일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며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려인동포뿐 아니라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더 촘촘한 시스템이 마련돼 갈리나 씨가 더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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