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지만 착한 스즈…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
전쟁 속 사라져가는 행복, 고향 히로시마에는…
물폭탄이든 열폭탄이든 복장 터지는 날씨의 계속이다. 이런 여름에는 집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시원한 것 마시며 하는 영화 감상도 좋은 피서법 중 하나다. 독자들을 위해 여름에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은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내포뉴스가 태국 공포영화 ‘셔터’, 중국 무협영화 ‘와호장룡’에 이어 고른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구석에’이다.
2017년 11월 개봉한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스즈라는 한 소녀 아니 한 여인을 통해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1933년 12월부터 1946년 1월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겁지는 않다. 러닝타임 129분의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그림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출발은 1933년 12월, 평범하고 평화로운 히로시마의 한 마을, 김 배달을 가는 소녀로 시작된다. 그 소녀가 바로 주인공 스즈다. 성묘를 하러 간 할머니 집의 정령을 만나고, 연필을 잃어버려 애를 먹는 등 다소 난감한 일들도 있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착한 스즈의 시간은 여전히 다정하다.
1943년 12월, 열여덟이 된 스즈. 이때는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한 지 2년 후다. 혼담을 받은 스즈는 말한다. “싫은 지도 좋은지도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1944년 2월, 쿠레로 시집을 가는 스즈. 그녀를 맞이한 건 해군의 포격훈련 소리다. 쿠레의 제일 안쪽 구석 집, 그곳이 스즈가 살 곳이다. 그곳에선 군함의 야간 훈련이 잘 보인다. “나는 도대체 어떤 곳에 와 있는 걸까.” 스즈의 말이다.
전쟁이 곁에 바싹 다가와 있던 어느 날 시누이가 오고, 스즈에게 히로시마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멍한’ 스즈는 친정 나들이로 여기고 히로시마에 간다. 군수공장에 동원되는 동생 스미는 기름 냄새가 걱정이다. 결전 비상조치, 부인회 모임 등 뭔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마주한 스즈는 아버지가 준 용돈을 손에 쥐고 쿠레로 돌아가며 인사한다. “잘 있어, 히로시마.”
쿠레로 돌아온 스즈는 남편과 마을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예전 고향에선 토끼를 닮은 파도를 그렸던 바다였는데 이젠 항공모함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남편에게 무려 2700명이 타는 군함 ‘야마토’에 대한 설명도 듣는다.
배급은 줄어가지만 살림에 익숙해지는 스즈는 쌀은 다섯 배의 물에 부어 죽을 끓인다 등 식량과 연료를 아끼는 방법을 줄줄 외우고 있다. 공습경보가 익숙해져 가는 1944년 여름 시누이는 돌아온다.
전쟁 중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배급도 계속 줄어든다. 스즈는 실수로 ‘귀한’ 설탕을 물에 녹여버리고, 시어머니가 준 돈으로 암시장에 설탕을 사러 간다. 엄청난 물가에 놀란 스즈는 묻는다. “이런 나라에 살 수 있을까.”
1945년 2월 스즈의 오빠가 전사했다. 스즈는 납골함에 유골 대신 돌을 넣어 보낸 군인들이 이상하다. 그해 3월과 4월에는 공습이 계속된다. 스즈의 남편도 곧 군인이 된다. 스즈는 자는 남편을 그림으로 담는다.
그해 6월 공습 중 다쳐 입원한 시아버지 병문안을 가는 스즈, 조카 하루미도 함께다. 시아버지는 말한다, “아가야, 야마토가 침몰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공습경보가 울린다. 스즈와 하루미는 방공호에 숨고, 잠시 후 밖으로 나온다. 요란한 소리는 멈췄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한폭탄이 터지고, 하루미는 사라진다. 그리고 토끼를 닮은 파도를 그리던 스즈의 오른손도 사라졌다.
손을 잃은 스즈는 히로시마로 가고 싶지만 남편이 말린다. 고향 마을 축제 날이었던 8월 6일, 그날 스즈는 돌아가기로 돼 있었지만 병원 진료 때문에 늦어진다. 그날 히로시마에는 미국이 만든 ‘신형폭탄’이 떨어졌다. 원자폭탄 ‘리틀보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는 스즈는 울분이 터진다. 이미 너무 많은 게 사라져버린 후였기 때문이다. 1946년 1월 히로시마 고향 집을 찾은 스즈,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고 동생 스미도 원폭 피해자가 됐다. 스즈는 말한다. “이곳에선 모두 누군가를 잃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사실 여름이라기보다는 8월에 어울리는 영화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일본은 이겨낼 거다’라는 메시지 아니냐며 이 영화를 비난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전쟁이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을 앗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또 토끼를 닮은 파도를 그리던 스즈의 오른손이 사라졌듯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8월, 전쟁을 그린 영화를 보며 평화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