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 지나간 자리… 꿈이 움텄습니다
거친 파도 지나간 자리… 꿈이 움텄습니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2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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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동행] 바다를 사랑하는 소녀
내포뉴스-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연간기획
생활고·가족갈등… 일탈·교우관계 악화 ‘악순환’
상담과 함께 극복 시작… “받은 만큼 베풀고 싶어”

내포뉴스는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함께 오는 11월까지 ‘동행(同行)’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연간기획 제목 ‘동행’에는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내포뉴스, 지역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편집자 주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아홉 번째 ‘동행’의 주인공 해정이를 위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선상화 선생님과 굳게 맞잡은 손을 담아왔다. 사진=노진호 기자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아홉 번째 ‘동행’의 주인공 해정이를 위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선상화 선생님과 굳게 맞잡은 손을 담아왔다. 사진=노진호 기자

‘바다’는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검푸른 파도 거품을 보면 무섭게 느껴지다가도, 그 위를 나는 새들, 말없이 조연 역할을 해주는 섬들과 이뤄내는 풍경을 보면 그저 아름답다. 보는 이를 겁먹게 한 파도 역시 가끔은 더없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내포뉴스와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함께하는 연간기획 ‘동행’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바다를 사랑하는 ‘열여섯 소녀’ 해정(가명)이다. 해정이의 시간도 내일이 다가오는 게 겁이 날 정도로 힘듦의 연속이었지만, 이젠 조금씩 평안을 되찾고 있다.

해정이와의 대화에 앞서 현재 중3인 이 아이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봐왔다는 청소년동반자 선상화 선생님을 먼저 만났다. 그는 “해정이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인연이 됐다.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고, 부모님과 갈등도 컸다. 그런 게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 행동으로 교우관계가 힘들어지는 ‘악순환’이었다”며 “어린아이에게는 버거운 일들이라,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고 회고했다.

선상화 선생님은 “해정이는 내적 자원이 풍부한 아이다. 방황은 했지만 스스로 일어서는 힘이 강했다. 어려움을 겪으며 더 단단해졌다”며 “노력을 거듭하며 꿈을 갖게 됐고 그러면서 그 노력에 힘이 더 붙었다. 지금은 가족 간의 관계도 좋아졌고, 학교성적도 올랐다”고 자랑했다. 이어 “앞머리를 푹 내리고 땅만 보고 다니던 아이가 앞을 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더했다.

홍성군청소년상담센터는 해정이를 위해 지속적인 상담과 함께 학교와 협의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이랜드 인큐베이팅(위기가정자립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랜드 인큐베이팅 사업은 △긴급지원 △위기지원 △자립지원 등으로 구분되며, 대상 선정 시 주거비와 치료비, 생계비, 생필품 등을 지원한다.

선상화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해정이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물은 건 ‘학교’였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느냐’고 확인한 해정이는 “가면 숨 막히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학교를 정의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답도 있었다. 그는 “하지만 공부는 재밌어요. 역사를 가장 좋아하고, 영어는 별로…”라고 말해줬다.

해정이가 안고 있던 어둠에 대해선 이미 들었기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해정이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바다’를 꼽았다. 그는 “유치원 때쯤 가족들과 대천해수욕장에 갔던 게 떠올라요. 바다는 항상 좋아요”라고 말했다.

선상화 선생님은 해정이에 대해 ‘스스로 일어섰다’고 설명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해정이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상담선생님(선상화)이 엄마 같아요”라며 “중1 가을인가 같이 바다를 보러 갔었는데 정말 좋은 추억이 됐어요”라고 더한 후 눈시울을 붉혔다.

지켜보던 선상화 선생님도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해 하루 일정을 뺐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해정이가 ‘숨 좀 쉴 수 있겠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내 역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금 해정이는 계획을 갖고 있고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인근 지역 고교로 진학을 준비 중이며, 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되길 원한다.

해정이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에요. 이곳을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라며 “내가 받은 만큼 베풀고 싶어요. 그래서 품게 된 꿈”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그리고 있는 10년 후의 모습도 물었다. 그러자 “아마도 내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바다가 있는 곳이면 더 좋고요”라고 말했다.

해정이에게 한 마지막 질문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었고, 고민 끝에 돌아온 대답은 “없다”였다. 하지만 해정이의 그 답은 무언가 결여돼 있거나 안타까운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씩 이뤄내 가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플렉스(flex)’인 것 같았다. 이 아이의 내일들이 모두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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